며칠 전, 아내와 딸아이랑 영화를 보기 전에 저녁 외식을 하였다. 식사자리의 이야기 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아내는 나이가 들면서 몸 상태와 기분이 시시각각 변해 두렵다고 했다. 딸아이는 대학 3학년을 마칠 동안 뚜렷한 꿈이 없었으나, 이제는 뭔가 해보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였다.
먼저 아내가 그동안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내놨다. 병원에서는 아직 갱년기가 온 게 아니라고 하나 갑자기 몸이 덮거나 춥고, 마음이 너무 쓸쓸하고 우울해 세상사는 재미가 별로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딸아이는, 엄마가 속마음을 감추지 말고 자기나 아빠에게 몸 상태나 감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걱정을 끼치는 게 싫고, 또 말을 한들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오롯이 자신이 이겨내야 할 몫이라고 느낀단다.
이에 딸아이는 엄마 혼자서 해결하려면 힘들 것이라며 두 가지 예를 들었다. 가게에 자주 찾아오시는 엄마 친구도 우울증이 심각했지만 모녀지간에 많은 대화와 여행으로 극복하지 않았느냐는 것과, 아빠와 요즘 등산을 하면서 나눈 숨김없는 대화로 자신감을 찾은 딸아이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공부에 흥미도 없고 능력도 안 되는데 사회가 인정하는 직업이 갖고 싶어, 4학년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자 했단다. 그러나 몇 해 공부해도 합격할 자신도 없고, 다행히 공무원이 된다 해도 행복할 것 같지 않단다. 그래서 남들 시선 개의치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 길이 비록 험난하다 하여도.
딸아이는 2년여 동안 폐결핵을 치료했다. 이제는 다 나아 약을 먹지 않지만, 내성이 생겨 한 움큼의 독한 약을 끼니마다 먹었었다. 그 때문인지 밥맛을 잃어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고, 귀중한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병 치료에 매달렸었다.
그 일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여긴 아내는, 딸아이가 힘든 몸에 장래고민까지 하며 수많은 밤을 설쳤다는 얘기를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자기 설움과 엄마 걱정까지 더해 울다보니 덩달아 나까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심각한 분위기에 맛있는 회를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다, 훔쳐 먹는 사탕처럼 오물거렸다. 덩달아 접시에 오른 광어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벅거렸다. 결론은 남편인 내가 더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과, 아까우니까 남은 회는 다 먹고 일어나자는 것이었다. 난 그 자리에서 두어 마디 맞장구 한 것 밖에 없는데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
그동안 아내의 신경질이 늘고, 밤중에 자주 깨어나 훌쩍이고, 친정엘 자주 다녀오고, 나에게 더 집착할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었다. 일주일 전에는 아내에게 서운한 게 있어 말수를 줄였는데, 나의 눈치를 보느라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자리를 옮겨 ‘타워’를 보면서도 아내와 딸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떻게 도와야 되는지 곱씹어 보느라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불길에 갇힌 사람들에게 소방관 설경구가 영웅이었듯이 가족에게는 내가 영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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