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지난 6월 29일 인천 연수구의 한 원룸에 신고를 받은 119 구급대가 출동한다. 구급대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집주인 이 아무개 씨(여·29)가 멍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고, 화장실에서는 권 아무개 군(16)이 알몸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권 군의 옆에는 권 군의 흉부를 누르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A 씨(29)가 있었다. A 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 군은 이미 호흡을 멈춘 상태였다. 최근 화제가 됐던 인천 교생 살인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최초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이 씨와 권 군이 ‘과외선생과 제자’였던 관계, 그럼에도 두 사람이 동거를 했던 사연 등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주범과 정황은 어느 정도 드러났으나 대체 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있는 상황이다. 사건의 전말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경찰서로 온 교생 이 씨는 권 군이 숨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6월 27일 새벽 2시쯤 권 군에게 과외를 가르치던 이 씨는 권 군이 갑자기 옷을 벗기며 성폭행을 시도하려고 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있던 끓는 물을 권 군에게 끼얹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이 씨는 보리차를 끓이기 위해 끓는 물을 놔뒀는데 이를 자신의 몸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평소에도 권 군이 안아달라는 표현을 가끔 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성폭행을 하려고 했다”라고 전했다.
이 씨가 27일 성폭행을 당한 증거로 찍은 동영상도 이 씨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씨는 사건이 일어난 뒤 A 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당시 상황에 대한 동영상을 찍게끔 했다. A 씨는 이 씨의 남자친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A 씨가 찍은 동영상에는 “보리차 물 안 끓이고 있었으면 나 죽을 뻔했어. 성폭행 당할 뻔했어”라고 울부짖는 이 씨의 모습이 나온다. 이 씨는 당시 속옷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권 군은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나는 안 벗겼다. 절대 아니다”를 되풀이하기만 했다.
그런데 동영상을 통해서 본 당시의 정황은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동영상은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던 권 군이 갑자기 “누나가 먼저”라고 대답하는 도중 촬영이 중단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 군이 입은 상처가 심상치 않았다. 팬티 차림의 권 군은 몸 전체가 빨갛게 화상을 입은 채 화장실 문 앞에서 쉽사리 나오지 못했다. 온몸은 심하게 폭행을 당한 듯 상처투성이인 상태였다.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던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했다.
게다가 이 씨는 끓는 물을 부은 후 119에 신고하기까지 이틀 동안 화상을 입은 권 군을 방치했던 점이 드러났다. 이에 이 씨는 “권 군이 치료를 권해도 이를 거절했다. ‘따갑지 않느냐’고 물어봤는데 안 따갑다 해서 내버려 둔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이어 “(사망 당일 29일에는) 권 군이 화장실에서 쓰러져 자는 줄 알았다”고 이해하기 힘든 설명을 하기도 했다. 권 군의 사망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권 군이 입은 화상은 2도에 달했다. 소독을 해주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수치였다. 결국 권 군의 사인도 화상에 의한 패혈증(전신에 심각한 염증 반응이 일어나는 상태)이었다.
▲ 이 씨는 권 군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두 개의 냄비에 있던 4리터가량의 끓는 물을 권 군의 얼굴과 몸 전체에 들이부었다고 털어놨다. 사진출처=SBS 방송화면 캡처
이 씨가 의심스러웠던 경찰은 이 씨의 남자친구인 A 씨와 이 씨의 휴대폰 내역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A 씨 역시 심각했던 권 군의 상태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씨의 진술과 어긋나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이 씨가 끓는 물을 부은 시점은 27일 새벽 2시가 아니라 ‘26일 오후 3시’인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 씨가 문자 메시지를 통해 “권 군에게 뜨거운 물을 부었다”고 A 씨에게 고백한 시각이 바로 26일 오후 3시였다.
경찰이 이를 집중적으로 추궁하자 이 씨는 새로운 사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 씨가 고백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 씨는 누워 있는 권 군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냄비 두 개에 있던 4ℓ가량의 끓는 물을 권 군의 얼굴과 몸 전체에 들이부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이 씨는 방 안에 있던 골프채와 스키부츠를 권 군에게 휘둘렀다고 밝혔다. 이 씨가 휘두른 골프채는 손잡이 부분이 헐거워질 정도로 심하게 닳아 있었다. 이 씨는 이 모든 일이 권 군을 향한 ‘질투심’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가르치는 데도 권 군이 한눈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 군과 이 씨 사이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강릉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이던 이 씨는 4학년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었다. 임용 고시를 준비하던 이 씨는 2012년 4월 강릉의 J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가게 된다. 권 군은 당시 J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 씨는 권 군의 학급에 교생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권 군은 이 씨가 교생으로 온 이후 성적이 쑥쑥 올랐다. 운동을 좋아했던 권 군은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반에서 항상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는데 이 씨가 온 이후로 반에서 7등까지 할 정도로 성적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이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달라지는 권 군을 본 권 군의 부모는 이 씨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권 군이 즐겨가던 체육관을 공부를 한다며 그만둔 시기도 그즈음이다.
그러던 권 군이 11월부터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학교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급기야 12월에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잘 다니던 학교를 자퇴해 버렸다. 권 군은 “(운동을 많이 하다 보니) 몸에 냄새도 나고 왕따를 당해서 학교 다니기 싫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실제로 권 군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다. 권 군의 한 친구는 “권 군이 친구들로부터 왕따는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자퇴에 권 군의 부모는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 씨가 “권 군을 도와주겠다”며 나서기 시작했다. 권 군이 대입 검정고시에 붙을 수 있도록 개인 과외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 씨는 심지어 ‘무료 과외’를 해주겠다며 권 군의 부모를 설득하기도 했다. 대신 집중적인 공부를 위해 권 군을 자신이 살고 있는 인천에서 합숙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 범행에 사용된 골프채. 손잡이 부분이 헐거워질 정도로 심하게 닳았다.
이 씨를 신뢰했던 부모는 이 씨를 만난 후 아들의 변화를 알고 있었기에 걱정스럽지만 ‘합숙 과외’를 허락하게 됐다. 당시 부모는 이 씨가 권 군에게 방을 따로 내주고 공부만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의 생각은 달랐다. 권 군을 자신이 살고 있던 원룸에 데리고 가 사실상 ‘동거’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동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 씨가 권 군을 데리고 간 이후, 권 군의 부모는 한동안 이 씨와 아들의 근황을 알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권 군의 부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씨에게 몇 번이나 주소를 물어봐도 이 씨가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부모는 이 씨에게 매달 70만~80만 원의 과외비를 보내며 그저 아들이 무사하기를, 검정고시 준비를 잘 마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이 씨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권 군을 보내고 4개월가량이 지난 후였다. 이 씨는 부모에게 다짜고짜 “아들이 나를 성폭행하려 했다”며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4시간 후에 다시 연결된 전화에서는 권 군이 전화를 받아 “아빠 내가 선생님이 여자로 보여서 그랬어. 아빠가 잘 이야기해줘”라고 더듬거리며 얘기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부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이상한 낌새는 여전했다. 권 군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어눌하고도 ‘공포에 질린’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권 군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이틀 후인 6월 29일이다. 권 군에게 씌어졌던 ‘성폭행범’이라는 누명은 이 씨가 사실을 실토하면서 벗겨지게 됐다. 이 씨가 밝힌 범행동기인 ‘질투심’은 이 씨와 함께 J 고등학교에 교생으로 온 B 씨(여·29)를 향한 것이었다. 평소 B 씨를 좋아하는 권 군을 보며 이 씨는 “B 씨와 연결시켜 줄 테니 나를 잘 따르라”며 제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함께 과외를 시작한 계기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B 씨와 만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 씨의 꼬드김을 권 군이 받아들인 데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결국 이렇게 시작된 동거생활은 잔혹한 이 씨의 범행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경찰 관계자는 “권 군이 B 씨를 계속 좋아하자 이 씨가 강한 질투심을 느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 씨가 ‘권 군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동거하는 기간 동안) 폭행했던 사실을 실토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이 씨와 함께 교생생활을 했던 B 씨는 이 씨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같은 대학에 진학한 두 사람은 교생실습도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됨으로써 친구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권 군이 B 씨를 좋아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권 군의 지갑에 B 씨의 사진이 담겨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 씨는 그런 권 군의 모습을 보며 “B 씨에게 잘 보이려면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며 코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권 군이 이 씨와 어울렸던 사실은 권 군 주변 친구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권 군의 한 친구는 “둘이 상당히 친해 보였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학생과 친하게 지냈던 건 이 씨뿐만이 아니었다. B 씨 역시 학생들과 잘 어울려 다녔다고 한다. J 고등학교의 교생 평가 교사는 “두 교생이 지나치게 학생들과 사적으로 어울려 다녀 평가를 좋지 않게 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B 씨에 따르면 권 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B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때까지 “B 씨와 잘 되게 해주겠다”며 권 군을 유도한 이 씨의 행각이 모두 속임수였던 셈이다.
한편 이 씨의 질투심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전해진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권 군을) 죽이려 한 것은 아니었고 화상으로 얼굴이 흉해지면 다른 사람과 멀어질 줄 알았다”고 진술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씨의 잔혹한 행각은 밝혀졌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은 남아있다. 특히 이 씨의 남자친구로 알려졌던 A 씨에 대한 의혹이다. 사건을 접한 한 네티즌은 “동영상을 찍은 A 씨가 당시 권 군을 왜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동영상을 찍을 당시 권 군의 모습은 화상과 상처 자국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A 씨가 이 씨와 알고 지내던 이성 친구일 뿐, ‘연인 관계’는 아닐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연인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네티즌은 “A 씨가 남자친구라면 4개월 동안 권 군과 동거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겠느냐”라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씨의 단독 범행일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남자친구라고 수사를 안 했겠느냐. 이미 수사가 끝난 상황이다. 더 이상 확인해 줄 것은 없다”라고 일축했다.
무엇보다 의혹이 이는 점은 권 군의 체형이다. 키가 172cm가량,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는 건장한 체격의 권 군이 키가 160cm에도 못 미치는 이 씨에게 쉽게 제압당할 수 있었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다. 더군다나 권 군은 태권도 단증까지 소유할 정도로 운동을 꾸준히 했기에 여자인 이 씨의 폭력에 무방비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을 거란 추론이다.
여러 가지 의혹에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까지 동원된 이번 사건은 이 씨가 권 군 앞에서 일종의 ‘절대자’ 역할을 했을 것이란 분석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 씨를 따라 동거까지 하게 됐고 친구와의 관계가 결핍된 권 군이 이 씨의 말을 점차 하나의 명령처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프로파일러는 이 씨에 대해 “집착과 질투가 강하고 ‘성격장애’ 증상을 보인다”는 소견을 내놓기도 했다.
사건은 지난 8일 검찰에 송치되어 현재까지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 수사와 달라지는 부분은 수사가 종결되어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도 수사가 진행중”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