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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친일파행위로 사형수가 됐다 살아온 어마어마한 여자가수

최강동원 2013. 12. 6. 20:06

 

중국이름 이향란(李香蘭 중국 발음으로는 리샹란), 일본이름은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 1920.2.12~ )

 

사진은 며칠 전 서프라이즈에 소개된 이향란 스토리

 

중국과 일본의 과거 파란만장한 역사를 얘기하자면 그리고 전세계 역사를 통털어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하고 기구하면서도 찬란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여자스타를 얘기하자면 이 이향란을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 방송된 서프라이즈를 본 이들은 이 여인을 알텐데 제가 다시 한 번 자세히 소개하자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여인, 친일파로 몰려 사형수 위기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목숨을 구제받아 생존한 기구한 여인, 이중국적과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여인, 일본인 최초로 헐리우드에 진출한 여인, 그 악명높은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을 전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단독인터뷰 따낸 여인, 동양의 마타하리로 불리웠고 숱한 염문과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던 여인 등 이 여인에게는 숱한 수식어가 따라붙으며 워낙 기구하고 치명적인 인생을 살았던 탓에 아직 생존해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이 이루 열거가 불가능할 정도로 최근까지도 쉬지 않고 제작 중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이력을 들려드리자면,

이향란은 1920년 중국 봉천현(현재 랴오닝)의 탄광마을인 푸순에서 태어납니다

출생지는 중국이지만 부모는 모두 순수일본인으로 부친은 러일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에서 만주로 이주해 현지 철도회사에 근무했던 친중파 일본인

이를테면 재중교포였는데 원래는 야마구치 요시코라는 본명이 있었지만 그녀를 친딸처럼 여긴 부친의 친구가 애칭 겸 편의상 사용할 중국이름으로 자신의 필명을 따서 이향란이라 지어주었고 이를 중국에 있는 내내 사용했으며 이 이름은 그녀 평생을 그림자처럼 쫓아 다니게 됩니다


소녀 시절 폐병을 앓게 되는데 이를 치료하고 목을 틔울 작정으로 성악을 배우게 되며 이 과정에서 뛰어난 노래소질을 발견해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그러다 중국 라디오 방송에 발탁돼 가수로 본격적인 데뷔를 하게 되며 섹시하고 이국적인 용모와 뛰어난 가창력 그리고 중국어와 일본어 모두를 완벽하게 구사했으며 춤솜씨까지 인정받아 이를 바탕으로 인기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게 되죠

이 때 발표한 하일군재래 및 상해의 밤, 야래향 등의 곡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그녀의 공연은 전시 중인 최대혼란 상황임에도 자그만치 7하고도 반바퀴라는 지금도 인류에 회자되는 전설적인 기록을 낳게 됩니다

여기서 말 하는 7바퀴 반이란 그녀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의 행렬을 뜻 하며 극장에 입장하기 위해 극장 밖에서 자그만치 일곱하고도 반 바퀴를 극장건물을 돌고돌 정도로 엄청난 대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전쟁이 최정점이라 여기저기서 대포를 쏘고 포탄이 떨어지던 어지러운 시국에 말이죠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때 상황을 가리켜 `전쟁의 사나운 포화 속에서도 문화를 향한 인간의 본능과 욕구는 꺼질 줄 몰라 일곱바퀴 반의 전설을 낳았네`라고 표현하기도

이후 인기는 나날이 상승하고 때마침 터진 일본의 중국 침략 시기에 때를 맞춰 자신의 실제 조국인 일본을 위해 이른바 친일파 작품들을 찍게 됩니다

이건 그녀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니 당시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세워둔 곳인데다 그녀를 발탁해 은막으로 끌어들인 만주영화사 대표가 심상치 않은 인물이었던 것

그는 일본인으로 우익 테러리스트 출신, 이런 그는 이향란을 영화에 출연시켜 일본 군국주의나 대동아 침략미화 소재로 이용합니다 

 

이향란이 당시 출연영화들에서 맡은 역할은 주로 일본인 장교와 사랑에 빠지거나 항일운동을 하다 일본에 매료돼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꿈꾸는 등 일본의 대동아 침략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중국인 처녀 캐릭터
그러다 일본 패전 후 중국에 남아있던 그녀는 친일파 전범으로 분류돼 재판에 회부되었고 갖은 고문을 당하며 심한 고초를 겪다가 친일파 행위가 인정돼 결국 사형을 언도 받습니다

엄연히 중국인으로 알고 있던 인물이 일본찬양영화에 출연해 일본을 미화하고 그들의 중국침탈을 정당화 포장둔갑시키는 연기를 하고 그에 관련된 노래들을 불렀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였죠

하지만 총살집행을 불과 이틀 남겨 둔 시점에서 그녀의 러시아인 친구가 그녀를 구명하기 위해 그녀 부모가 있는 만주로 긴급히 날아가 모든 전후상황을 전달한 뒤 그녀가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호적증명서를 들고 재판부를 찾아와 증거제출함으로써 극적으로 구명 받습니다

그 사이 그녀의 절친이자 함께 재판을 받았던 일본인 친구는 결국 총살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
 
사형집행해지로 인한 안도의 한숨도 잠시, 석방 직후 생존을 위해 일본행 배에 올랐다가 그녀를 알아본 승객들이 `저기 민족반역자 매국노 이향란이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이들의 손에 붙들려 배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져 또다시 경찰서행을 하게 된 것

소식통이 어둡던 시절이다보니 그들은 당시 이향란이 일본인이며 재판을 통해 무혐의로 석방된 사실을 미처 몰랐기에 벌어진 해프닝

여기서 그녀는 또다른 친일파 행적으로 인한 문제들이 제기되면서 재조사와 재판을 받았고 결국 재판부는 그녀를 석방시켜주는 조건으로 48시간 내에 중국을 떠나라는 국외강제추방명령을 내립니다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급히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라탔고 이번에는 승객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배가 완전히 항구를 떠날 때까지 화장실 칸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여곡절 끝에 타게 된 일본행 배 안에서 자신의 대표곡인 야래향이 흘러나와 이를 들으며 그동안 중국에서 겪은 숱한 사건과 풍파들이 떠올라 선상에 기댄 채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 파란많은 상황을 겪은 뒤 부모의 고국인 일본으로 건너온 그녀는 본명인 야마구치 요시코로 활동하며 여전히 인기가수 겸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이후 야마구치 셜리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진출해 헐리우드와 라스베가스에서도 활동 합니다

 

여전한 매력과 가창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주디 갈란드`(주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 `스타탄생` 등으로 과거 헐리우드와 브로드웨이 라스베가스에서 엄청나게 날리던 전설적인 뮤지컬 여배우로 그녀의 딸 역시나 유명여배우 겸 가수인 라이자 미넬리)라는 애칭을 들으며 활동한 헐리우드에서 주로 맡게 된 역할은 위 사진에서 보듯 `미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국적이고 신비한 일본인 여성` 캐릭터로 미국인들의 오리엔탈리즘 자극

 

중국에 있을 때 일본인과 사랑에 빠지는 중국인 여자 역할 전문이다가 이번에는 미국인과 사랑에 빠지는 일본여자 캐릭터 전문이 된 것
 
또 이 외에도 자신이 추방을 당했던 중국 대신 당시 영국령이던 홍콩으로 날아가 현지에서도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죠

그리고 가수생활 은퇴 후 방송인으로 전격변신해 당시 베트남전과 중동전쟁 등에 현장취재기자로 뛰어 다녔으며 당시 베일에 쌓여있던 북한의 김일성을 사상최초로 단독인터뷰 해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합니다

전해지는 후문에 따르면 생전 김일성은 언론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인물로 알려졌지만 이향란의 열렬한 팬이라 결국 그녀가 직접 인터뷰하는 조건으로 수락 했다고

 

이 사진이 이향란이 중년이던 시절 당시 북한의 주석이던 김일성과 만나는 모습


그리고 60대 이후에는 정계에도 진출해 무려 3선의 의정활동도 했으며
 

 

이 외에도 각종 스캔들과 사랑 그리고 결별로 화제를 뿌렸으며 위 짤에서 보는 것처럼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파란만장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몇 년 전 일본 TBS사에서 드라마로 제작된 이향란 일대기 방영 당시 극 중 이향란 역을 맡았던 우에토 아야(소녀검객 아즈미 시리즈와 어텐션 플리즈, 고교교사 등 각종 일드와 영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여배우)와 포즈를 취한 이향란

 

그리고 위에서 보시는대로 각종 책으로도 출판되었을만큼 드라마틱한 인생의 여인

 

이 사진이 바로 그녀의 미수 즉 아흔를 넘긴 최근 모습, 고운 자태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하지만 격동의 세월을 살았던 인물답게 포스가 장난 아님이 느껴지는 것 같음
 
만일 그녀가 세상을 떠난다면 후세인들은 아마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굵고 길게 살다간 여인이자 격동의 20세기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겪었던 인물로 기억할 겁니다 아주 오래도록.


那南風吹來清涼 那夜鶯啼聲輕唱
맑은 남풍은 시원하게 불어오고 밤꾀꼬리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구나
月下的花兒都入夢
달빛 아래 꽃들은 모두 꿈에 젖는데

只有那夜來香 吐露著芬芳
오직 달맞이꽃만이 향기를 뿜고 있네

我愛這夜色茫茫 也愛著夜鶯歌唱
이 아늑한 밤빛도 좋고 꾀꼬리의 노랫소리도 좋지만

更愛那花一般的夢 擁抱著夜來香 吻著夜來香
꿈 속에서 달맞이꽃을 안고 입 맞추고 있는 있는 게 더욱 좋아

夜來香 我為你歌唱
달맞이꽃이여, 난 널 위해 노래하고
夜來香 我為你思量
달맞이꽃이여, 난 널 그리워하네.

啊~我為你歌唱 我為你思量
아~ 난 널 위해 노래하고 널 그리워 해

夜來香~ 夜來香~ 夜來香~
달맞이꽃~ 달맞이꽃~ 달맞이꽃~

이것이 바로 이향란이 부른 오리지널 야래향(夜來香 달맞이꽃)입니다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힛트를 기록한 이 곡은 이향란 중국 강제추방이자 2차 대전 종전 직후 원가수인 이향란의 경력문제로 인해 한 때 중국 내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던 사연 많은 곡

 

몇 년 전 영화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이 부르기도 했던 이 곡은 사람들은 흔히 등려군(鄧麗君1953~1995 위 사진) 노래로만 막연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 등려군은 이 곡을 리메이크 한 것이며 등려군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이향란이 불렀습니다
이 곡은 이향란이 일제치하 중국에서 처음 발표해 전설적인 대힛트를 기록한 불멸의 명곡이자 등려군 외에도 손으로 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기도


 
1. 好花不常開아름다운 꽃이 항상 피어있진 않고

好景不常在멋진 경치도 항상 그대로는 아니에요

愁堆解笑眉시름을 떨치고 얼굴을 펴고 웃어봐요.

淚灑相思帶그리움 때문에 눈물이 흘러요.

今宵離別後오늘밤 떠나시면 

何日君再來님은 언제 다시 오려나.

喝完了這杯이 잔을 다 비우고서

請進點小菜안주도 더 드세요.

人生難得幾回醉인생에서 몇 번을 취하기도 어려운데

不歡更何待서먹한 마음으로 어떻게 더 기다리겠어요

(來來來, 喝完了這杯再說吧)

(자, 이 잔을 다 비우고 다시 얘기해요)

今宵離別後오늘밤 떠나시면

何日君再來그대는 언제 다시 오려나.


2. 停唱陽關疊이별의 노래는 그만하고

重擎白玉杯다시 백옥잔을 들어요. 

殷勤頻致語은근하게 자꾸 말을 건네며

牢牢撫君懷그대의 품을 꼭 어루만져요.

今宵離別後오늘 밤 떠나시면

何日君再來그대는 언제 다시 오려나.

喝完了這杯이 잔을 다 비우고서

請進點小菜안주도 좀 더 드세요.

人生難得幾回醉인생에서 몇 번을 취하기도 어려운데

不歡更何待서먹한 마음으로 어떻게 더 기다리겠어요

(哎, 再喝一杯 乾了吧) 아. 다시 한잔을 다 비워요.

今宵離別後오늘밤 떠나시면

何日君再來님은 언제 다시 오려나


이 곡이 바로 이향란이 부른 오리지널 하일군재래(何日君再来 님은 언제 다시 오려나)입니다


이 하일군재래와 아까 소개한 야래향은 이향란 최초 발표 이후 중국가요의 영원한 여왕 등려군 외에도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가수들 심지어 한국 내에서도 화교가수 주현미씨와 원로가수이자 백년설씨 미망인 되시는 심연옥씨가 리메이크한 불후의 명곡이죠


 

무려 93세가 된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이향란은 지난 1992년 당시 막 개방화 물결을 타고 있던 중국의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 강제로 추방당한 후 처음 가게 된 것이니 무려 거의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고국(?)귀환이 되는 셈

이 때 이향란은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 등 모교를 방문해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으며 중국의 고위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2차 대전 당시 일본미화 영화와 가요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전 어려서 세상물정을 몰랐으며 그래서 그게 잘못된 행위인 줄도 모른 채 주변에서 시키는대로 끌려다녔습니다

제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 시절 그렇게 일본찬양 행위를 했던 점 뒤늦었지만 이제와 여러분들 앞에서 사죄 드립니다 용서해 주세요`>

 

분명 그녀는 일본인이기에 어쩌면 그 친일파 행각을 사죄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쿨하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대놓고 인정했죠

게다가 이게 그저 중국인들 앞에서 선보인 겉치레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있으니 그녀는 일본에서 의정활동하던 시절 대동아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중국 여성들과 위안부 여성들을 위해 자원봉사하고 그들을 격려하는 발언을 여러 번 했던 것

 

결국 그녀는 언행 모두를 통해 자신의 친일파 행위를 속죄하며 평생 살아온 셈이죠

흔히 `일본이 만들어낸 중국의 꽃`이라 불리웠던 이향란, 격동의 20세기 세계사를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몸소 두루두루 숱하게 겪은 역사의 산증인 중 산증인이자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참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드는 인물

 

어떤 언론인은 이향란을 두고 이렇게 묘사 했습니다

 

`세계격동기 시절 일본이 자신들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중국에서 창조해낸 중국의 꽃이다`

출처 : 직찍&포토
글쓴이 : 드림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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