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성 어부 연쇄살인사건
사건 참조 사진
범행에 사용한 1t급 FRP 어선
범행에 사용한 흉기
20대 4명 수장시킨 70대 살인 어부 풀스토리
일요신문 | 입력 2007.10.12
한평생 어부로 살아온 70대 노인이 20대 남녀 4명을 자신의 배에 태우고 나가 바다 위에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더구나 성추행하려다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전남 보성경찰서는 지난 9월 29일 이 사건의 피의자인 오 아무개 씨(70)를 살해 등의 혐의로 체포해 다음날인 30일 구속했다고 밝혔다.
↑ 20대 남녀 4명을 자신의 배에 태워 나간 뒤 바다에 떠밀어 살해한 70대 어부 노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성추행을 하려다 반항해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노인(가운데)이 자신의 배에 올라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오 씨는 자신의 배에 태운 여성들을 바다 한가운데에서 성추행하려다 반항하자 이들을 밀어 바다로 빠트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오 씨는 바다에 빠진 피해자들이 배 위로 올라오려고 하자 갈고리가 달린 어로장비로 다리 등을 내리치는 잔인함을 보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과연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바다 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대 후반부터 고기를 잡으며 파도와 50년을 넘게 사투를 벌여온 오 씨가 왜 갑자기 성욕에 굶주린 노인으로 변해 자신의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몸싸움을 벌였던 것일까. 경찰의 수사결과와 현장검증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추석 연휴기간이던 지난 9월 25일 전남 보성군 회천면 율포리의 한 선착장. 출항준비를 마치고 막 배에 오르려던 오 씨에게 20대 여성 2명이 다가와 "멀리 경기도에서 왔는데 배 한 번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말을 건넸다. 그들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안 아무개 씨(23)와 조 아무개 씨(24)였다. 오 씨는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이고 두 여성을 자신의 0.5t짜리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갔다.
선착장에서 2.2㎞쯤 떨어진 어로작업장에 도착한 오 씨는 이곳에서 약 3시간 동안 주꾸미 등을 잡았다. 그 사이 두 여성은 오 씨가 잡은 고기를 맛보기도 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았던 오 씨가 돌변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오 씨가 다가와 느닷없이 조 씨의 가슴을 만진 것.
두 여성은 오 씨의 갑작스런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다. 특히 직접 성추행을 당한 조 씨는 오 씨의 멱살을 잡으며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안 씨는 낮에 한 여성이 자신의 휴대폰을 빌려 걸었던 전화번호로 '배를 타다 갇힌 것 같다. 경찰보트를 불러 달라'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뒤 안 씨는 친구 조 씨를 도와 오 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비록 70대 노인이긴 했지만 평생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온 오 씨의 완력은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10분간을 배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중 조 씨가 먼저 수심 5.2m 바다로 빠졌다. 잠시 뒤에 오 씨와 안 씨도 서로의 멱살을 붙잡은 채 같이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뱃사람인 오 씨에게 거센 바다의 조류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여성이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오 씨는 능숙하게 헤엄쳐 배 위로 올라왔다.
오 씨가 배에 올라탔을 때 이미 조 씨는 조류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간 상태였다. 안 씨 역시 겨우 배를 붙잡고 올라오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코 올라설 수 없었다. 배 위에 있던 오 씨가 어로 장비인 삿갓대(길이 2m 정도의 나무막대 끝에 갈고리를 매단 어로장비, 부표를 끌어당길 때 쓰임)를 이용해 안 씨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오 씨는 배에서 떨어진 안 씨의 다리 등을 삿갓대로 다시 2~3번 내리치기도 했다. 체포된 후 오 씨는 "살려주면 내가 발각될 것 같아서 삿갓대로 여자를 밀어 넣었다"라고 진술했다.
한편 바다 위에서 오 씨와 두 여성이 사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안 씨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이는 안 씨의 휴대폰을 빌렸던 30대 여성의 남편이었다. 이 남성은 자신의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부인은 문자메시지의 발신자가 아까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간다던 여성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전 직원을 비상소집해 피해자들이 배를 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비롯해 일대 해안가에 대한 수색에 나섰다. 이와 동시에 안 씨의 휴대폰 위치추적을 병행해 나갔다. 하지만 수사는 이내 벽에 부딪혔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경찰 관계자의 얘기.
"해안가 수색작업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통신수사 역시 바닷가의 특성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육지에서는 기지국 한 개가 반경 200m 정도의 거리를 관할하지만 여기서는 기지국 한 개가 7㎞를 맡는다. 바다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문자를 보낸 위치를 추적해도 바다라는 것 이외에 별다른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수사는 피해자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실종 다음날인 26일 피해자들이 배를 탔던 선착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해안가에서 조 씨의 사체가 발견됐다. 또 28일 새벽엔 안 씨의 사체마저 근처 해안가에서 발견됐다. 모두 어로작업을 하던 어선이 발견한 것이었다. 사체를 인양한 경찰은 사체에 대해 검안을 실시했다. 그 결과 심하게 다툰 흔적이 있고 신체 여러 군데에 얻어맞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안 씨의 시신은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한쪽 발목이 부러진 상태였다.
경찰은 우선 피해자가 탔던 배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관내 335척의 선박에 대해 사건 당일 출항 여부와 선주의 알리바이를 면밀히 조사해 가던 중 오 씨의 선박이 사건 당일 오전에 출항한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오 씨의 선박 내부를 수색한 결과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긴 머리카락 수십 개를 비롯해 피해자의 신용카드와 볼펜 한 자루도 찾아냈다.
경찰은 오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29일 그의 소재지를 파악해 검거에 나섰다. 경찰이 오 씨의 집으로 갔을 때 그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경찰을 따라나섰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에 도착한 오 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런 여자들은 태운 적도 없다'며 발뺌을 한 것. 하지만 배에서 나온 증거들을 가지고 계속 추궁하자 오 씨는 "배에 태워달라고 해서 태워줬다. 그런데 조 씨가 조업을 방해해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조 씨가 빠졌고 조 씨를 구하려던 안 씨도 스스로 물에 뛰어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이 같은 오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목격자가 없는 바다에서 벌어진 사건이어서 그의 범행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증거와 정황을 가지고 오 씨를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경찰은 오 씨에게 피해자의 부검 소견 등을 제시하며 끈질기게 추궁한 끝에 범행 사실을 자백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오 씨는 "조 씨의 가슴을 만지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바다에 빠졌는데 나만 올라왔다. 두 명 중 한 명은 바다에 떠내려갔고 한 명이 배에 올라타려는 걸 내가 삿갓대로 밀어낸 뒤 달아났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 씨는 피해자들이 물에 가라앉은 것을 확인하고는 태연하게 옷을 갈아입은 뒤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오 씨의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한 달 전 남녀 대학생 2명이 실종됐던 장소와 비슷하고 당시 사체로 발견됐던 남학생의 상처와 이번 사건 피해자인 안 씨의 상처가 유사한 점을 파악하고 오 씨에게 여죄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결국 당시 실종됐던 2명의 대학생들도 자신이 살해했다는 오 씨의 충격적인 고백이 흘러나왔다. 경찰이 밝힌 남녀 대학생들의 살해사건 전모는 이렇다.
지난 8월 31일 오후 4시 30분경 선착장에서 출항 준비를 하던 오 씨에게 연인 사이였던 대학생 김 아무개 씨(21)와 추 아무개 씨(여·20)가 '배를 태워 달라'며 다가왔다. 오 씨는 두 사람을 배에 태우고 자신의 어로작업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1시간가량 고기잡이를 하던 오 씨는 배의 앞쪽에서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보던 김 씨와 추 씨에게로 다가갔다. 갑자기 오 씨는 한 손으로 김 씨의 엉덩이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의 등을 잡은 후 바다 속으로 빠트렸다. 여자친구 추 씨는 갑작스런 오 씨의 행동에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오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빠진 김 씨를 향해 삿갓대를 휘둘렀다. 오 씨가 김 씨에게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추 씨는 119에 무려 네 차례나 전화를 했다가 끊었다. 겁에 질린 추 씨가 말은 하지 못하고 그냥 걸었다가 끊기만 반복했던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도 김 씨가 계속 배에 오르려 하자 오 씨는 삿갓대로 김 씨의 다리 등을 내리쳤다. 김 씨가 빠진 바다는 훗날 추석연휴에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빠진 곳에서 1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물도 깊고 물살도 빠른 곳이어서 바다를 잘 아는 사람도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장소라고 경찰은 전했다.
김 씨가 떠내려간 것을 확인한 오 씨는 겁에 질려 떨고 있던 추 씨에게 다가가 가슴을 만졌다. 추 씨가 오 씨의 옷을 쥐어뜯으며 거세게 반항하자 오 씨는 '너도 같이 죽어라'라고 하면서 추 씨를 바다로 밀었다. 추 씨는 바다에 빠진 후 배에 오르려 했으나 배 위에서 훼방하는 오 씨를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추 씨도 물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들의 실종신고가 접수된 것은 다음날인 9월 1일. 추 씨의 부모가 '딸이 보성에서 실종됐다'며 신고를 한 것. 당시 신고를 받은 경찰은 추 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확인하고 해안선 일대를 수색했다. 경찰은 추 씨가 119에 여러 차례 전화한 것을 밝혀냈지만 바다라는 특성상 추 씨의 '실종' 위치를 발견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던 중 이틀 뒤인 3일 오후 6시께 추 씨의 사체가 발견됐다. 처음 물에 빠진 곳에서 무려 4㎞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추 씨의 시체에는 특별한 외상이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남자친구인 김 씨의 시체가 처음 물에 빠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역에 떠올라 여수 해양경찰이 인양했다. 발견 당시 김 씨의 사체는 발목이 부러져 있었고 흉부에 심한 상처가 나 있었다.
애초 오 씨는 이 사건에 대해 "둘이 내 배에 탄 것은 맞다. 하지만 내가 죽이진 않았다. 김 씨가 소변을 보다 미끄러져 떨어졌고 이에 놀라 소리치던 추 씨를 나도 모르게 밀어 빠트린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의 몸에 난 상처 등을 봤을 때 피살된 것으로 확신하고 오 씨를 계속 추궁한 끝에 범행 전모를 밝혀낼 수 있었다.
한편 김 씨의 시체를 처음 발견했던 당시 여수 해경은 사체를 부검까지 했지만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잠정 결론을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처음 사건을 접수한 수사팀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할 경찰서의 당시 수사 역시 피해자를 봤다는 목격자나 유류품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초동수사가 미흡해 2차 살해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해양경찰서와 보성경찰서는 오 씨가 검거된 이후에도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사건에 대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경과 경찰이 보다 유기적인 공조 시스템을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피해자 추 씨의 친척이라고 밝힌 한 40대 남성은 "솔직히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렇게 수사를 (제대로) 했으면 됐을 것 아니냐. 모든 선박을 샅샅이 조사하고…. 또 아무리 바다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는 하지만 119에 그렇게 신고를 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번 사건도 문자메시지가 아니었다면 자기네들끼리 미루다가 대충 넘어갔을 것 아닌가"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1일 보성경찰서에서 만난 피의자 오 씨는 시골마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이었다. 그는 심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죽을죄를 지었다"라며 뉘우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4명의 꽃다운 생명을 수장시킨 죄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게 수사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지금 오 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등 신빙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겠나. 피해자들이 모두 죽은 상황이라 오 씨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여죄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어 오 씨가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이상 별 도리가 없다. 그래도 혹시 다른 실종사건과 연관이 있지는 않은지 좀 더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보성=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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