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교정시설...(사건사고포함)

[스크랩] ■희대의 살인마들

최강동원 2012. 10. 2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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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잔악한 살인범들!!

 

1.유영철:전라북도 고창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연쇄 살인한 범죄자이다.

노동일을 하는 부모 사이에 3남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난 유영철은 5살때 서울로 전가족이 이주하게된다 중학교 1학년인 14살때 아버지가 지병인 정신분열성 간질환으로 사망하자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공업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던 중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유씨는 21살 때인 1991년 마사지 안마사인 황모씨와 결혼, 11살된 아들까지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형사입건 되는 등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내 사회와 철저히 격리되었다. 2000년 3월 특수절도 등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 2002년 5월께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일방적으로 이혼당했으며 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13일 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명예교수 이은옥(72세)과 부인 이덕(67세)을 살해했으며, 그해 10월에는 9일에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은순(82세) 등 일가족 3명을, 16일에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준희(60세)를 살해했다. 2003년 11월 18일 화요일에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종석(87세) 등 2명을 살해했고, 2004년 4월에 노점상 안재선(44세)을 살해하고 시신을 월미도에 버렸다. 이에 앞서 2004년 3월부터 그해 7월까지는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한숙자, 고선희, 우주연, 김미영, 임미연(27세) 등 2004년 한 해 동안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21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한편 유영철은 2004년 7월 18일 체포되었는데 현장검증에서 26명을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2.정남규:전라북도 장수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의 시민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2004년 1월, 경기도 부천시에서 윤기현(11세)과 임영규(10세)를 납치 살해하는 등, 경기도와 서울 일대(주로 서남부 지역)를 돌아다니며 심야에 귀가하는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거나 거주지에 침입하여 살인과 방화를 함께 저지르는 등 연쇄살인 행각을 벌여 당시 언론에서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 , '비오는 목요일밤의 괴담'이라는 등 다소 선정적인 보도를 했다.

2006년 4월 22일에 체포되었으며, 자백에 의해 유영철이 저질렀다고 주장했던 이문동 전위선(24세) 여인 살인사건의 진범임이 밝혀졌다 또한 두개골 함몰등 부상자가 20여명에달해 사상자 전체수는 유영철을 능가

 

3.김대두:전라남도 광양

1975년 8월 13일부터 10월 7일까지 55일 동안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마을 주민 안종현(63)을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무안군, 경기도 평택시, 서울 등지로 9차례를 걸쳐 모두 17명을 도끼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1975년 10월 7일 서울에서는 피해자의 피가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 하근배(26)의 신고로 검거되었다.

그리고 연쇄 살인범 김대두는 체포되었을 때 현장검증에서 자신이 경기도 일대에서 일가족 단위로 4차례나 살해했다고 주장하였다.

 

4.김해선:전라북도 고창

2000년 10월 25일 첫 번째 희생자인 정 양은 단짝 친구와 문구점에서 강아지 인형을 산 뒤 집으로 돌아오던 중 실종됐다. 정 양은 실종 반나절 만에 마지막으로 목격된 도로에서 150여 미터 떨어진 산 속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아이의 사체는 양지바른 무덤 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다. 며칠 뒤 피해자가 범인의 손이나 사물로 성추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숨진 것이라는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발표됐다.

12월 19일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고생 남매가 실종됐다. 남매가 사라진 뒤 반나절 만인 다음날 아침 9시 20분 경, 피해자의 집에서 불과 300여 미터 떨어진 풀밭에서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 박 군이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박 군의 사체는 목도리로 눈을 가린 상태였고, 시신의 목에는 노란 노끈이 단단히 매듭지어져 있었다.

누나인 박은미 양의 주검은 남동생의 시신과 500여 미터 떨어진 야산에서 발견됐다. 주검의 상태는 목과 다리, 가슴, 배, 음부 등 온 몸이 칼에 찔리거나 벤 상처투성이였고 강간당한 징후가 뚜렷했다. 더구나 스타킹 위 오른쪽 허벅지 안쪽의 얇은 살덩이가 예리한 흉기로 어른 손바닥 크기만큼 도려내진 상태였다.

첫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진 지 56일 만이자 박 양 남매가 시신으로 발견된 바로 다음날 수사팀은 목격자의 결정적 제보에 의해 김해선을 검거, 그로부터 범행을 자백받는다.[2]

 

5.이호성:전라남도 순천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4번타자 출신으로 역대 부녀자 연쇄 살인범중에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삶을 누리던 사람이었다 사업을 실패한뒤 돈과관련된 문제로 내연녀로 추정돼는 40대 여성과 그녀의 딸 3명등 4명의 모녀를 살해하고 암매장 하였으나 아파트 cctv에 이호성이 시체로 추정돼는 가방을 들고 나가는것이 찍히면서 경찰이 공개수배를하자 한강에서 투신자살 익사체로 발견?다

4모녀의 부검결과 둔기혹은 주먹으로 마구 때려 죽인것으로 판명

그외에도 이전 동업자가 이호성을 마지막으로 만난뒤 행방불명되어 동업자 살해 용의자로 수사를 받았으나 증거부족으로 풀려난 적이있었다  

 

6.보성어부:전라남도 보성

광주에서 놀로온 남녀 대학생을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간뒤 남학생을 바다에 빠트리고 배로 올라오려는 남학생을 물갈퀴로 마구 찔러 죽인뒤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바다로 던져서 수장시켰다 오씨는 이뿐 아니라 경기도에서 여행온 두명의 여학생을 배에태워 바다로 나간뒤 같은 방법으로 성추행후 바다로 던져 수장시켰는데 피해자중 한명이 죽기직전 핸드폰으로  구조요청을하는 전화를 수초간 했는데 "어디 전화하니" 하는 범인 오씨의 목소리와 배의 엔진소리가 녹음이돼면서 검거 한편 오씨는 사형 확정 판결 받았으나 사형은  헌법에 위배?다고 헌범소원을 냈다 현재 사형제 위헌소청 심사중이다

 

7.온보현:전라북도 김제

온보현은 1994년 9월13일 서울 양재동에서 귀가중인 20대 여성을 훔친 택시로납치, 살해하는 등 부녀자 6명을 납치해 이중 2명을 살해했고, 경찰이 공개수사에나서자 온보현이 범행 보름만에 자수, 막을 내린 사건이다.

그 이전에도 택시기사의 강도, 성폭행의 사건도 있었지만 온보현의 사건이 '택시'를 여성이 탈때 뒷자리에 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8.지존파:전라남도 영광일대

 1993년 4월 김기환은 강동은, 김현양 등을 포섭하여 '지존파'라는 조직을 조직하고 현대백화점 고객명단을 입수하여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1993년 7월 길가던 한 20대 여인을 목졸라 살해하고 그 해 8월에는 조직을 이탈한 송봉호를 살해했다. 1994년 9월 8일 이종원과 이 모(당시 27세)여인을 납치하여 이종원을 9월 10일 살해하였고, 사흘 후 중소기업의 기업가였던 소윤오 부부를 납치하여 돈을 갈취한 후 9월 15일에 살해했다.

그 후 두목 김기환이 납치해 온 한 여성의 처분을 두고 조직원 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이 틈을 타 극적으로 탈출한 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지존파 6명 전원이 1994년 9월 21일에 체포되면서 일단락되었다.[2] 체포되었을 때까지 반성이 없었으며, 살인의 이유를 불평등한 사회 모순이라며 사회로 돌리고 자신들의 가치 전도 현상을 정당화하려 했다.[3] 하지만 체포 직후에는 모두 진심으로 회개하였고 진술에도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1] 그 해 10월 31일 재판 결과 이틀 전에 가담한 이경숙을 제외한 지존파 6명 전원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항소심상고심에서도 사형이 확정되어 1995년 11월 2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경숙은 정상참작이 작용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일단락되었다

 

9.막가파:전라남도 영광 선후배사이

 지존파를 모방했으며 '막가는 인생'이라는 뜻에서 '막가파'라고 이름 붙였다는 한다 주유소를 습격하는등 강도 행각을 벌이다 일제 혼다 승용차를 타고가는 부유층 40대여인을 집가지 따라간뒤 납치하여 돈을 빼았고 구덩이를 판후 알몸으로 구덩이에 들어가게하여 생매장

경찰의 사체 수습결과 구덩이에 사체가 꼿꼿이 서있는데가 목이 꺽여있는것을 수상히여겨 추궁하자 구덩이를 너무 얕게파서  머리는 꺽어버린뒤 묻었다고 진술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10.신창원:전라북도 김제

학교를 그만두고 1982년에 절도죄로 소년원에 들어갔다. 이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창원의 친아버지인 신흥선씨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인데 신흥선씨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아들 신창원이 소년원에 가서 새 사람이 되길 갈망하였으나 신창원은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본격적인 범죄인생을 살게 된다. 신창원은 출소 뒤에 서울로 올라갔다. 음식점 배달부 등을 하다 1983년 절도죄로 또 다시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1989년 공범 3명과 함께, 서울 돈암동 정모 씨 집에서 강도행위를 하다 한 후배가 정씨를 죽여 강도치사죄로 수배를 받았고 그 해 9월 검거되었다. 검거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후 1994년 부산교도소에 이감되었다.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의 화장실 쇠창살을 쇠톱날로 절단하고 탈출하였다. 이후 약 2년 동안, 전국을 오가며 약 9억 8000여만원을 훔쳤고, 훔친 돈으로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유혹해 동거하며 아지트로 삼았다. 그러나, 동거할 곳이 없을 때는 토굴 등에서 생활하며 쥐고기로 연명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의 추격에 쫓기는 중 신창원의 담당형사인 원종열 경장이 쏜 총에 맞아 부상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추격을 끝내 따돌려 신창원은 자신의 초인적인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신창원의 검거를 위해 헬리콥터를 띄우고 전경을 동원했으나 번번이 속수무책이었으며 열세 번을 눈앞에서 놓쳐 많은 경찰관들이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999년 7월 16일, 그가 숨어있던 전남 순천의 아파트에서 가스관 수리를 의뢰받은 수리공의 제보를 받은 경찰에게 검거되었다.

 

11.조경수,김태화:전라남도 나주

1989년 5명을 강도살해하고 1명은 중상을 입히는 등 '갈 데까지 간' 상태에서 또다시 무차별적인 범죄 행각에나서 2월 6일 저녁 8시경 서울 종로의 한 미용실을 습격한 조경수와 김태화는 미용실 원장과 손님 등 모두 5명의 여성을 칼로 위협해서 옷을 벗긴 뒤 현금과 귀금속 등 약 270만 원에 해당하는 금품을 강취한 후 도주했다. 이후 서울에서 19회, 경기도 일대에서 18회 등 총 38회에 걸쳐 여성들만 있고 현금을 취급하는 미용실을 상대로 강도 행각을 저질렀다.
3월 5일, 끈질긴 추적 수사 끝에 이들의 은신처를 찾아낸 형사들이 수원 샛방을 덮쳤고 마침 혼자있던 조경수가 검거됐다. 나흘 뒤인 9일, 김태화는 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조경수와 김태화는 모두 5명을 살해, 1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여러차례에 걸친 특수 강도 행각으로 인해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상고했으나 기각됐다. 이들은 1991년 사형이 집행돼었다

 

12.김일병:전라남도 여수(인천)

2005년 전방부대 GP에서  선임병들에게 총기를 난사하여 8명사망 2명중상을 입힘

 

13.총기살해음주운전자:광주광역시

음주운전을 하다 초등학생을 친 40대 남자가 이 사실을 감추려고 초등학생을 공기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모 씨(48·인테리어업)는 4일 오후 광주 북구 일곡동에서 술에 만취한 채 승합차를 몰다 A 군(11)을 치었다. 이 씨는 범행을 감추려 다친 A 군을 차에 싣고 20여 km 떨어진 전남 담양군의 한 저수지로 향했다. 평소 사냥을 즐기던 이 씨는 공구함에 갖고 다니던 공기총을 꺼내 뒷좌석에서 신음하던 A 군의 왼쪽 머리와 가슴 등에 7발을 쐈다. 시신은 담양군 남면 만월리의 한 계곡에 버렸다.
이 씨는 지인에게 “아이를 죽여 계곡에 버렸다”는 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지인의 신고로 10일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이 씨는 경찰조사에서 “A군이 차에 치여 숨졌고 겁이 난 나머지 시신을 야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A 군이 교통사고가 아니라 총상 때문에 숨진 사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을 통해 밝혀졌다. 11일 경찰이 시신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총상이 미세해 눈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12일 부검 결과, 시신에서 납탄이 발견돼 총상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이 씨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사이 A 군의 가족은 4일 오후 태권도장에 간다며 집을 나선 아이가 들어오지 않자 전단지 4000장을 만들어 돌리며 애타게 A 군을 찾았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는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경찰은 특가법상 도주차량 혐의로 구속된 이 씨에 대해 살인 및 시체유기, 총기불법소지 혐의를 추가했다.

 

14.약물간호사:광주광역시

내연녀와 공모… 살해후 교통사고 위장 30대 검거
보험금을 목적으로 내연녀와 짜고 아내를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한 30대 남자가 경찰에 검거됐다.
광주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내연녀와 짜고 아내를 살해한 뒤, 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보험금을 타내려 한 조모씨(36)와 이모씨(28.여)에 대해 26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달 16일 밤, 광주 남구 지석동 포충사 인근 도로에서 조씨의 부인 A씨에게 특정 약물을 혈관에 주사 및 살해했다는 것이다.
조씨는 범행 직전 A씨에게 술을 먹여 저항하지 못하게 한 뒤, 간호사인 내연녀 이씨를 불러 약물을 주사하게 했다
.
이어 혼수상태에 빠진 A씨의 머리를 도로에 부딪쳐 사망케 했다.
이를 교통사고로 위장한 조씨 등은 90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내려한 혐의를 받아 왔다
.





15.정성현:충청남도 보령

혜진예슬양 납치 성추행후 토막살인 노래방도우피 살해등으로 2008년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

13세이하 아동을 성추행하고 살해하면 사형또는 무기징역에처하도록 하는 어린이 성범죄 살인 가중처벌법인 "혜진예슬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돼었다

 

 

16.강호순:충청남도 서천

2009년 1월 24일 경기도 서남부에서 연쇄적으로 여성을 납치하여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범인이다.

2009년 1월 27일2008년 12월 경기도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자 대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추가 수사에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실종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처음에는 연쇄 살인을 부인하다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자, 군포 여대생을 포함해 7명을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

강호순이 살해했다고 밝힌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었다. 추가로 2009년 2월 17일에는, 2006년 9월 강원도 정선군에서 정선군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 윤 모(여성, 당시 23세)씨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보험을 든뒤 전부인과 장모를 집에불을 질러 살해한의혹도 있으나 자신은 부인하고있다


 

17.심영구:충청남도 금산

89년 당시 출소를 마치고 나온 심영구는 수중에 가진 돈이 떨어지자금전을 목적으로 범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총 9차례에 걸쳐서 서울과성남, 구리 지역을 배회하며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이 사건의 대부분은 금전을 목적으로 한 살인이 대부분이지만 평소자신을 무시하던 지인을 단숨에 죽이기도 한 경우도 있었다.- 총 8명이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3명은 중상을 입었다. 당시 화성연쇄 살인사건에 관심이쏠려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으나 피해자수와 범행수법에서 길이남을 연쇄살인범

 

18.황영동:대전광역시

1998년에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칼로 여성을 위협하여 강간한 혐의(특수 강간)로 수원 중부서에 구속돼었다가 검찰에 송치? 후 두 눈에 녹내장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구속 집행 정지로 풀려난 40대 범인이 대전으로 가서 임신부와 60대 할머니를 포함한 5명의 여성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더구나 범인 황영동(당시 49세)은 강간 등 전과 14범인 상습 흉악범이었다. 그런 범인을 아무런 감시 조치 없이 거리로 내보낸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황영동은 미혼이었고 일자리도 변변치 않고 가족도 없는 외톨이였다. 8월 13일 구속 집행 정지로 풀려났지만 갈 데도 없고 치료는 커녕 먹고사는 데 필요한 돈도 없어 병원에는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처지였다. 1972년 군복무 도중 탈영해 3년간 복역한 뒤부터 모두 14차례에 걸쳐 19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터라 범죄 말고는 아는 것도 없고, 교도소 말고는 친숙한 곳도 없었다.
결국 강도짓이라도 해서 돈을 마련하겠단 생각에 칼을 들고 대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만 골라 칼로 위협해 돈을 뺏고 강간한 다음 온몸을 마구 찔러 살해했다. 그렇게 4명이나 살해하고도 모자라 10월 16일 밤 9시 반, 식당에서 고기와 술 등 6만원 어치를 먹은 뒤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임신 6개월의 여주인을 칼로 마구 찌르고 도주했다.
다시 수원으로 올라온 황영동은 10월 23일, 수원 장안구의 한 공중 화장실에서 무용 강사(46세)를 성폭행하다가 지나던 시민들에게 붙잡혔고, 수원 중부서에서는 다시 황영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간의 행적을 알아냈고,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 중이던 대전 동부서에 공조 수사를 요청해 범행 전모가 밝혀진 것이다. 그 해 겨울, 황영동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돼었고 현재 복역중이다.

 

19.정두영:지역미상(고아)

1996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9명의 시민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정두영은 지난 1999년 6월부터 강도행각을 벌이면서 17명을 살상하였다. 정두영은 18세 때인 지난 1988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 김찬일(43)씨를 살해, 11년 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곧 바로 절도죄로 붙잡혀 다시 6개월 동안 복역한 뒤 1999년 3월 출소했다. 이후 10개월 동안 16번의 강도 짓을 했고 그 과정에서 9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주로 부산, 울산과 경남지역을 활보하며 살인강도 행각을 벌였고 천안에서 인질강도를 저지르다 체포되었다.





1999년 6월 2일 부산 서구 부민동의 부유층 주택가에서 혼자 집을 지키던 가정부를 머리와 얼굴 부위가 거의 으스러질 정도로 잔혹하게 가격한 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당시 피해자의 집이 부산고등검찰청장 관사의 옆집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수사에 참고로 하였으나 후일 우연한 일로 밝혀졌다.

1999년 9월 15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 고급빌라촌에서 금품을 훔치면서 역시 가정부를 잔혹하게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1999년 10월 21일 울산 남구의 고급 주택에서 어머니(53)와 아들(24)을 둔기로 수십 차례 강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경찰에서는 일반 강도 살인에서는 볼 수 없는 '과다 공격'에 대해 주목하였으나 부산에서 발생한 이전의 사건들과의 연관성은 전혀 검토되지 않았다.

2000년 3월 11일 부산 서구 서대신동 고급 주택에서 두 명의 여성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살해하였으나 또 한 명의 여성이 아기가 있다며 살려달라고 호소하자 중상만을 입히고 '아기 잘 키워, 신고하면 죽인다'라는 말과 함께 이불을 덮어씌운 후 살려준다. 경찰에서는 이 생존자의 진술을 토대로 2,30대 나이에 키가 작고 왜소한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에 전국 경찰에 수배한다.

2000년 4월 8일 부산 동래구 모 철강회사 정진태(76) 회장의 집에서 정 회장과 가정부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정 회장의 친척인 김할머니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실신시키고는 사망한 것으로 착각하여 현금과 수표 2,430만원을 훔쳐 달아났으나 김 할머니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병원에 응급 후송된 후 목숨을 건지고 이후 천안에서 잡힌 정두영을 직접 대면하여 부산, 경남 지역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지목하여 일체의 범행에 대한 정두영의 자백을 이끌어낸다.

검거된 정두영은 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고 현재 부산구치소에 복역 중이다.

 

20.우범곤:경상남도 합천

1982년 4월 26일 오후 7시 30분경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29발, 수류탄 6발을 들고 나왔다. 우순경은 우선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을 살해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궁유면 내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깃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자정이 지나자 우순경은 총기 난사를 멈추고 평촌리 서인수 씨 집에 들어가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4월 27일 새벽 5시경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으며,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1.정상진:경산남도 진주

살기 싫다는 이유로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사람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6명살해 6명부상을 입힘

 

22.김대한:경상북도 예천

2003년 2월 18일 17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의 범인이다. 범행 직후 2시간 만에 체포되었으며 무기징역형을 언도받고 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 평소 지병이었던 정신질환과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해 2004년 8월 30일 사망하였다.

 

 


자료는 위키 피디아와  표창원 경찰대 교수님의글 등을 인용한것이고

 

몇몇 자료가 없는것은 뉴스기사를 토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70년대이후 사회를 뒤흔들었던 연쇄살인과 악랄범죄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범죄들 모아봤습니다.

 

화성연쇄살인이나 충남대천 유아6명 연쇄실종 사건등 미제사건은 제외 했습니다

 

호남지역 출신 분들이 22명중 14명을 차지했네요

 

충청지역이 4명....둘이합쳐 차령이남지역이 22명중 무려 18명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부녀자를 납치 강간 살해 암매장한 연쇄살인범

전부 그 쪽 동네 출신이네요

 

이러니 지역편견(?) 지역감정이  생기는게 아닐까요?

출처 : 사회
글쓴이 : 매카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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