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948년 정부수립 이후 1997년 말까지 50년 동안 998명이 사형장에서 최후를 맞았다. 마지막 순간,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서로 달랐다. 1초라도 삶을 연장해 보려는 사람부터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사람까지…. 1983년부터 사형 집행에 입회하면서 현장을 기록해 온 문장식 상석교회 담임목사의 ‘사형장 일기’에는 사형수들의 최후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1995.11.2 집행 김기환
지존파 일당 6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두목 김기환은 7시35분에 이끌려 왔다. ‘최후로 할 말이 있는가’라고 묻자 “죄인이 할 말은 없으나 남자는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회개하기보다는 자기가 했던 말을 합리화하려는 것 같았다. 그 후 냉소하듯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께 내가 새 인생을 걷는다고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7시55분에 집행됐고 8시8분에 절명했다.
#1992.12.29 집행 유충남
유충남은 살인 등 전과 9범의 흉악범이다. 첫 대면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라”고 했더니 “의리가 있어야지 나 혼자 천국 가겠다고 공범들을 배신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던 사형수다. 그러나 그는 도둑 두목에서 믿음의 두목으로 바뀌었다. 그런 그도 집행 순간 긴장하더니 물 한 컵을 달라고 했다. 냉수를 가져다주니 따뜻한 물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만큼 목숨이 연장되고 있었다. 구치소장이 “신장과 안구를 기증하기로 한 게 확실한가”라고 묻자 “차라리 내 몸 전체를 병원에 기증해 연구용으로 사용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10분 후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소원대로 그의 몸은 병원 연구실로 옮겨졌다.
#1991.12.17 집행 윤도영
내연녀의 오빠를 죽인 혐의로 사형을 받은 윤도영. 그는 말다툼을 하다 얼굴을 때렸고 오빠가 넘어지며 깨진 항아리에 머리를 찔려 죽었는데 검사가 계획살인으로 몰아 죽게 됐다며 억울해했다. 국내 처음 국회에서 ‘사형수 특별감형’이 상정돼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장께 허리를 크게 굽히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사형집행 신호를 하던 보안과장을 향해서는 미소지으며 “금년에 꼭 진급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모두들 뜨끔했다. 살려고 몸부림쳤던 일도 허사였고 결국 휘장속으로 사라졌다(보안과장은 죄책감에 이듬해 옷을 벗었다:편집자주).
#1985.10.31 집행 최은수,최윤성
최은수는 죽는 순간까지 결백을 주장했다. 기도할 시간을 줬을 때 “하나님 아버지,저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하늘나라로 갑니다. 나는 억울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나를 오판한 자와 위증자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들도 구원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내게는 감사 인사를 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신앙으로 보살펴 주기를 부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최은수의 어머니는 아들 따라간다면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고,누님은 혈압이 올라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한 가정이 풍비박산난 것이다.');"
최윤성은 사형집행 사흘 전 교도관이 “몸 아픈 데 있느냐”라고 물어보자 집행을 짐작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아침운동도 안 나오고 책만 읽었다. 그는 죄의 용서를 빌며 구원받게 된 것을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교도관이 머리에 용수를 씌울 때도 찬송을 불렀고 가사가 생각나지 않자 “목사님,내 영혼이… 그 다음은 뭐지요”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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