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아기 지키려다 폭력 남편 살해했던 캄보디아인 초은씨, 8·15사면으로 석방
10.08.21 15:42
최종 업데이트 10.08.22 11:25▲ 캄보디아에서 온 '어린 신부' 초은씨(츠호은릉엥)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그러던 초은씨는 남편 폭력에 맞서 뱃속의 아기를 지키려다 살인자가 됐다. 초은씨는 8.15 사면으로 석방되어 딸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사진은 초은씨 사연을 다뤘던 SBS <그것이 알고 싶다>(2009년 9월 12일 방영)의 한 장면. | |
ⓒ SBS |
그동안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초은(캄보디아 이름 츠호은릉엥)이가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어 고향 캄보디아로 돌아가게 되었다.
"초은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축하해! 그리고 미안해. 한국에 와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아픈 상처만 안고 가게 되었네. 내가 대신 용서를 비니 나쁘고 아픈 기억들을 다 잊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목사님, 고마워요!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만나서 너무 행복했어요.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캄보디아 가서도 신앙생활 열심히 할게요."
조그만 몸집과 짧게 자른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초은이는 영락없이 작은 중학생 모습을 하고 있다. 1990년 5월생으로 이제 만 스무 살이 된 그. 보통사람들이 평생 경험하지 못할 험악한 일들을 한국에서 겪었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인사성도 밝아 오늘도 간수들을 만날 때마다 웃으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스무 살 차이 나는 초은이의 남편, 툭하면 때렸다
초은이는 캄보디아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초은이가 열한 살 되던 해 농사꾼이던 아버지는 바람이 나 가출해 어머니가 다섯 남매의 생계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도 열다섯 살 때부터 일용직 노동자(농사)로 돈벌이에 나서야 했고, 가난으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학업도 포기해야 했다. 당시 그의 꿈은 오직 하나,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가 한국 남자와 결혼을 결심한 것도 한국인과 결혼하면 끼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혼정보업체의 말도 그랬고, 실제 친구 중 한 사람은 한국 남자와 결혼해 잘살고 있었다. 십여 명의 남자와 맞선을 본 끝에 남편을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선량해 보였고 또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 아버지처럼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버릴 것 같지도 않았다. 비록 나이가 스무 살이나 위였지만 그를 선택했다.
2008년 4월, 초은이는 열여덟 어린 나이에 서른여덟이나 된 지체장애 4급인 한국인 남편에게로 시집왔다. 모든 게 낯설고 어렵고 두렵기만 한 한국 생활. 하지만 그녀의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할 남편은 술을 마시면 소리치며 윽박지르고 잠을 못 자게 하고 발과 손으로 머리와 몸을 툭툭 때렸다. 시쳇말로 초은이의 피를 말렸다.
결혼 후 남편은 일주일에 삼사일씩 술을 마셨다. 술만 마시면 주정이 심해 폭력을 휘두르며 "바보"라고 부르고, 무릎을 꿇게 한 채 새벽까지 잠을 재우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 술을 마시면 또 맞을까봐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이 더 노력하면 남편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한국어도 열심히 익혀 한국에 온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데 거의 문제가 없었다. 힘들어도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시댁 어른은 그에게 잘해주었지만 남편의 술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남편의 죽음, 교도소행... 그리고 딸 유나의 탄생
2009년 1월 31일. 사건이 일어나던 당일도 남편은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초은에게 면박을 주며 머리를 때렸다. 보다 못한 남편의 친구들이 이를 말리기까지 했다. 그날 초은이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귀갓길에 남편이 더욱 화를 내며 술을 사러 간 사이 두려움에 아파트 경비실에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시어머니는 늦은 시간이니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보자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곧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야단쳤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 고자질했다는 꼬투리를 잡은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더 큰소리를 지르며 때렸다. 무섭고 두려웠던 초은이는 임신한 배를 때리려는 남편에게 부엌칼을 꺼내들고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남편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칼을 빼앗으려 덤벼들었다. 초은은 남편과 함께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칼로 남편 옆구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남편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5일 뒤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후 초은이는 교도소에서 딸을 낳았다. 친권을 포기하지 않아 캄보디아의 외할머니가 양육하고 있다. 그래도 한국 국적을 받아 '김유나'라고 이름을 지었다. 5년 징역형을 받은 초은이가 청주여자교도소로 와 나와 만나게 되었다. 그 첫인상은 솜털이 남아 있는 소녀였다.
초은이의 형기는 2014년까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부산에서 일어난 베트남 여인 탓티황옥 살해 사건으로 전격적으로 사면이 이루어졌다. 초은이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딸 유나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을 만날 것이다. 그 마음은 기쁠 테지만 걱정도 많을 것이다.
그가 한국으로 시집오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함이요, 가난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함이었다. 셋째 딸인 초은이는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한국으로 시집왔다. 그런데 다시 그 가난한 과거로 돌아가게 됐고, 어린 딸까지 양육해야 하는 고통을 지게 됐으니 그의 마음은 어두울 것이다. 한국에 오면 가난에서 벗어나 행복할 줄 알았는데 살인자가 됐다. 그리고 양육비 한 푼 받을 수 없는 딸까지 딸리게 되었으니 그의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7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서 조아니따 필리핀 이주여성이 상업적인 결혼중개업에 대한 단속과 관리 강화 등을 요구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 유성호 |
이제 초은이는 딸 유나가 있는 캄보디아에 갑니다
그의 한국 생활은 아홉 달 결혼생활과 열아홉 달의 징역살이가 전부이다. 그런 초은이를 외국인 보호소 면회실에서 유리창 너머로 마주하니 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초은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너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아니에요! 목사님을 만나서 정말 행복했고 복을 많이 받았어요."
그에게 부성애를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돌아갈 비행기 삯이 50만 원인데 교도소에서 노동으로 번 돈과 우리 교회에서 영치금으로 넣어준 돈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교도소에서 모은 돈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래서 교회에서 항공료를 준비해 주었다.
아내와 교인들 몇몇은 초은이가 딸 유나에게 무엇을 사가지고 갈 것인가 생각하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돌이 지난 유나의 옷과 신발, 크레파스, 연필, 공책과 동화책을 샀다. 그리고 초은이의 속옷과 신발과 옷, 여행용 가방과 성경, 한국어를 잊지 않도록 국어사전과 소설책을 사주었다. 또 가까운 곳에 있는 선교사를 만날 수 있도록 선교사들 주소도 복사해 넣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유나의 양육비를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초은이는 우리가 캄보디아에 오면 통역해 주겠단다. 그는 통역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하고 글도 잘 쓴다. 그래, 이번에는 캄보디아 여행 계획을 한 번 세워봐야지! 고향에 돌아가서 살고 있는 초은이와 그의 딸 유나도 만나봐야지!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아야 할 것이다.
초은이는 어둡고 슬픈 기억과 가족을 만나는 행복한 꿈을 가슴에 담고 8월 24일이면 하늘을 날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안녕, 초은아! 이제 어둡고 슬픈 기억은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살아라. 너에게 행운이 있기를 빈다.
'법무부, 교정시설...(사건사고포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시신을 바꿔치기해 사망보험금을 노린 부부! /채널A 싸인 11회 (0) | 2013.11.04 |
---|---|
고국으로 돌아간 감옥 속 열아홉 신부 초은... (0) | 2013.11.04 |
[스크랩] 구조된 츠호은릉엥 가족(캄보디아) (0) | 2013.11.04 |
박한상... (0) | 2013.11.03 |
연쇄살인마...김대두 (0) | 2013.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