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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최성희 인터뷰

최강동원 2015. 1. 4. 18:42

 

2011/04/28 13:02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 꼭 한번은 만난다고 하죠. 

그래서 바다를 만났나 봅니다.

 

제 메일주소는 16살 때부터 줄곧 sesjung이었습니다. 

ses 팬이었거든요. 

모친상 이후 여러 매체에서 들어온 인터뷰 요청을 다 거절했다던 바다는

제 메일주소가 sesjung4652라는 점에 끌려 인터뷰 수락을 했다고 합니다.

바다는 그렇게 인연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 화보촬영 장소에 바다가 나타났을 때

화면보다 훨씬 더 작고 예쁜 얼굴에 한 번 놀랐고.

스타 같지 않은 소탈함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2시부터 6시 반까지 붙어있었으니, 우린 생각보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SES내 삼각관계 소문에서부터,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까지....

특히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들려줬던 그녀 앞에서

저는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정작 바다는 담담했었죠.

 

떨어져 앉아 있던 그녀가 제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의자를 당겨 앉았을때......

아주 사소하고 순간적인 그 작은 행동에 저는 진짜 마음을 열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는 바다 언니가 갑자기 팔을 뻗어 저를 덥쑥 안아주기도 했는데요.  

어쩐지 민망하면서도 감동적이더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짜리 팬이 27살의 기자로 그녀의 앞에 서다니요...

세월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이런 건가 봅니다.

 

저는 이 화보를 진행하기 위해 거의 2주간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역삼동 모델하우스를 빌린 일도, 전체적인 인터뷰 컨셉을 정해 매니저를 설득시킨일도....

스타일리스트에게 보이지도 않는 제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일도.....

꽃가게와 크리스피를 전전하며 촬영준비를 하던 일도...

어디서부터 뭘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는일도......

온통 쉽게 넘어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죠. ㅜ

그래도 4월호 216페이지를 열어본 순간 저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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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은 원래 가수가 아니라 배우였어요.

그것도 정극배우요.

예고에 진학한 것도 어쩌면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인생이 꼭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더라고요.

제가 걸 그룹으로 데뷔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가수로 활동하면서도 배우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장면이 그저 배우로서의

'한 신' '한 신'이라고 생각했었죠.

오죽하면 가수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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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슈, 유진은.

그냥 가족이에요.

특히 유진이는 저랑 5년을 같이 살았기 때문에 친자매 이상으로 깊은 애정이 있죠.

제가 대학교 실기시험을 준비하던 때인데 영어에 자신이 없던 저를 위해 유진이가 연습장에다

팝송의 발음과 해석을 일일이 다 적어줬어요. 슈는 일본어 노래를 한국어로 번역해주기도 했어요.

고마워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몰라요. 매일같이

과일을 깎아주며 엄마 노릇까지 해준 고마운 동생들이죠.

SES가 해체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돈독하게 지낼 수 있었던 건

그때 쌓였던 애틋한 시간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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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엄마 곁을 지키다 공연하러 나서는 길이면 늘 기도했어요.

내가 다시 병원에 돌아올 때까지 엄마를 지켜달라고.

내가 병실 문을 열었을 때 꼭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좋겠다고...

돌아가시던 그날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엄마는 항암투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어요.

겨우 58세에 떠나가신 게 못내 마음에 걸리지만 아름답게 보내드리기로 했어요.

엄마를 납골당에 모시던 날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떴어요.

그날 밤에는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는 꿈도 꿨고요.

막내가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어요.

 

 

발인 후 이틀 만에 KBS 열린음악회에 선 바다.

미리 예정된 스케줄인데 취소할 수는 없었어요.

그건 저를 위해 연주를 준비하셨을 오케스트라 분들이나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한편으로는 모든 분께서 저를 걱정하고 있던 시기에

제가 노래로 화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날 불렀던 you raise me up 은 이미 예전부터 선곡해 놓았던 곡이었어요.

밝고 경쾌한 곡이었다면 부르기가 힘들었겠죠.

이런저런 이유가 겹치다 보니 엄마가 꼭 이런 상황을 다 예견하고 가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사실 엄마 영정 사진 앞에서 노래 연습을 했어요.

엄마는 나 이해하지? 엄마를 위해 부를 거라는 거 알지? 끊임없이 말을 걸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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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성당 관리를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성당 조립식 건물에서 살았어요.

너무 어린 나이라 그런 집안 사정에 대해선 별로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지천으로 깔린 복숭아밭이 좋았어요.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집에 불쌍한 유기견들이 많았다는 점이에요.

아버지가 워낙 정이 많은 분이라 버려지고 병든 강아지를 거둬 길러주셨거든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성당에 개를 버리고 가더라고요. 그걸 다 길러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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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저는 매일 밤 성당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요.

달빛 아래서 옷이 흠뻑 젖도록 나만의 무대를 즐겼던 날들이었죠.

성당에 약수터가 있었기 때문에 늘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제가 매일 춤추고 노래를 하니까

이상한 사람이 산다는 소문이 돌았대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대를 열면서 언젠가 진짜 무대에 서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 아니면 누가? 하는 생각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