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많고 탈많던 해외파 콤비 방가와 프랑켄슈타인의 합류가 최종 확정되면서 한국 국가대표팀은 마침내 12명의 엔트리를 최종 완성지을수 있게 되었다. 당초 부상과 비자 발급 문제 등이 겹쳐서 한때 요 두 마리가 감히 대표팀 합류를 거부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루머도 나돌았지만 본인들이 대표팀 차출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대한농구협회의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더이상의 잡음없이 대표팀의 엔트리를 마무리지을수 있었다.
이번 대표팀의 목표는 역시 9월8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abc 대회에서 8년만의 정상탈환에 도전하는 것이다...뭐 전뚱 형님께서 새로이 감독을 맡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선수구성면에서 90년대부터 지겹게 보아오던 멤버와 그리 다를게 없다는 면에서 미래지향적인 시도나 실험은 발톱의 때만큼도 없긴 하다만, 최소한 현재의 전력에서 차출가능한 선수들은 모두 모았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인정해줄만 하다.
2002 아시안게임 우승이후로 한동안 국제대회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못했던 우리 나라로서는 이번 기회에 중국의 벽을 넘고 오랜만의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을 노려볼수있는 중요한 대회다. 성인대표팀이 출전하는 대회에서, 아시아권을 벗어난 국제 무대로서는 94 세계선수권 대회와 96 애틀란타 올림픽 이후로 한동안 구경조차 해보지못했던 한국 대표팀이다.
그리고 이 두 대회에서도 한국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개망신당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94대회때는 초반 스트레이트로 5연패를 당했다가 허옹과 깡통 형님의 맹활약으로 이집트를 잡고 막판 3연승으로 13위로(당시 참가국 16개팀) 체면을 세웠으나, 96애틀란타 올림픽 때는 1승도 마다하고 논스톱 7연패, 대회 최하위에 만족하는 걸로도 모자라서허옹 형님 주도하의 음주 파문으로 그해 올림픽에 출전한 각종 한국 대표팀중 최악의 스포트라이트 1위를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하셨으니.
솔직히 90년대 슬램덩크(만화)와 마지막승부(드라마)따위의 허황된 문화 매체가 본좌를 비롯하여 아직 한국농구의 국제적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어린 아그들 눈을 마이 버려놨다. 이 작품들은 90년대 국내에 농구붐을 일으켰던 혁혁한 공신이기도 했지만, 당시 농구팬들의 눈높이를 현실에 맞지않게 지나치게 높여놓은 것도 사실이니까.
원핸드 슬램덩크나 윈드밀, 버저비터, 강백호식 리바운드는 아무나 다 하는줄 알았고, 용가리가 한국판 채치수요, 하마는 한국판 바클리며, 문c나 우거지같이 당시 얼굴만 좀 생겼다고 과대평가받던 포워드들은 거의 윤대협이나 서태웅 레벨로 믿었던 어린 아그들에게, 시커먼 외국 얼라들과 부딪치지마자 배치기 한방에 저만큼 튕겨나가고, 슛한번 쏘아보자고 3점라인에서 빨빨거리며 재롱떨다가 냅따 찍혀나가고, 매경기 더블 스코어로 아작나는 참혹한 광경은 수많은 슬램덩크 세대들의 환상을 처참하게 짓밟아놓았더랬다. 90년대 초반 농구대잔치와 대학농구를 배경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농구신드롬은 90년대 중반 한국대표팀의 국제적인 망신과 성적 부진으로 거품이 걷혀나갔다고 보는게 적합할 것이다.
90년대 대표팀 주요 엔트리라고 한다면
센터- 용가리, 하마,전철,김유택(94 세계선수권 이후로대표팀 고사), 조동기, 정경호(아아..경호형님)
포워드- 문c,우거지,김용만,양갱이,양희승, 정재근, 조성원
가드- 허옹(통계내보니 대략 2-3년에 한번꼴로 사고쳐서 대표팀 제명과 복귀를 반복하셨다.원인은 대개 술과 탁월한 개김성!)
깡통 형님, 이상민, 오성식,김병철,김승기
여기에다 밀레니엄 전후로
센터- 하승진(프랑켄),이규섭
포워드- 추승균,조상현,방가
가드- 김승현, 신기성
정도가 보강되었다.(참고- 90년대 이후 대표팀 감독은 방열,이인표,최인선,김동광,정광석, 신선우, 김진,전뚱 형님 등이 거쳐가고 있다.프로농구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전 시즌 우승팀 감독이 거의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이외에도 김성철,김택훈,조우현 등 몇몇 멤버가 더 있겠지만, 대체로 요 정도 멤버가 대회마다 조금씩 돌려먹기했다고 보면 정확하겠다. 거의 90년대 농구대잔치 세대부터 현재 프로농구 시대의 중심 스타들까지 멤버가 거기서 거기라는게 느껴지시나?
특히 포워드와 가드는 그래도 선택의 폭이 조금있는 편인데 비하여 센터 자원은 정말 열악의 극치다. 용가리와 하마 등이 거의 국제대회에서 활약못했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많고 플레이스타일도 정통센터답지못하고 구리다고 비난하는 것도 일리있긴 한데, 얘네들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 자체가 없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부터 각급 대표팀이라는 대표팀에는 죄다 불려나가며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쌍욕먹는데 기분이 날리가 있겠나?
90년대가 한국농구계에 있어서는 르네상스기라고 할만큼 우수한 선수들이 동세대에 많이 배출되었고 이 선수들이 프로농구 시대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여전히 정상을 지킨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 수준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한국농구를 한단계 레벨업 시키지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전에 명확히 해야할 것은이것을 반드시 선수들 탓만으로 돌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솔직히 그동안 우리 나라는 국제 농구의 흐름에 어두웠고, 경험이나 전술적인 면에서 모두 미숙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는 한국농구의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에 도전할만한 뛰어난 지도자도 없고, 뛰어난 선수 자원이 있다 할지라도 체계적으로 육성 시스템이 전무하다. 그나마 용가리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2미터 대의 정통센터 자원도 전무했고, 골밑 자원의 부족으로 전철이나 하마같이 다재다능한 장신 포워드들의 재능을 4,5번에 묶어놔야했던 열악한 시스템, 깡통 형님이나 이상민 형님같이 아시아권에서는 수준급이었지만 월드 레벨에서는 창의성이 부족했던 포인트가드들의 리딩력 등 우리의 농구는 아시아권에서 오로지 중국만 올려다보고 있던 넘버2의 한계에 스스로 만족하고 안주하려는 느낌이 강했다. 중국이 일찍부터 아시아 정상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를 향해 도전의 닻을 올릴동안, 한국농구는 패배주의에 빠져 '세계수준에서 한국같은 팀은 안통한다.'라고 스스로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방가같은 선수들이 국내에 머물러있었다면 프랑켄이 지금보다 키가 10센터는 더 크고, 방가의 외곽슛이 nba급 레벨이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90년대 젊고 유능한 자원들을 보유하고도 한국농구가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는, 우수한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지도자들과 한국농구의 전술적인 무능함에도 책임이 있다.
매년 대표팀이 아시아권에서 타도 중국을 외치며 기운차게 닻을 올리지만, 한국은 언제나 국내 대회(농구대잔치와 프로농구)에 더큰 비중이 있을뿐, 장기적으로 한국농구의 국제적 수준을 어떻게 레벨업 시키고 세계무대를 향하여 한걸음 전진하겠다는 도전의식이 없다. 그냥 그때그때 국내 대회에서 잘했던 아그들 모아서 그 대회 성적만 망신안당할 정도로 치르는데 관심이 있을뿐. 그냥 생색용으로 몇 차례 국제대회 만들어서 대표팀 내보내면 한국농구 수준이 그냥 발전하나?
올해 abc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대표팀 선수들이나 전뚱 형님에 대해서 시비를 걸려는건 아니다. 물론 좋은 성적 올리고 기왕이면 짱개들 잡아서 세계대회에도 나가면 좋은 건 당연지사. 하지만 만날 그나물에 그밥으로 급조된 대표팀 만들고 안되면 대표팀 합류거부하거나, 기량 딸리는 선수들 탓으로만 돌려서 대표선수 답지 못하다는둥 책임떠넘기기만 할것이 아니라, 뭔가 한국농구가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비전을 좀 보여줬으면 소원이 없겄다. (대표팀 국제대회 출전 성적과 경기내용은 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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