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그 때 그 사람들...

최강동원 2009. 1. 20. 00:21
Before

개인적으로 역대 KBL에서 가장 이상적인 주전 라인업을 갖추었던 팀 중 하나로 99-00 시즌의 SK를 빼놓을수 없다. 좋아하는 팀과 선수가 각자 다르듯, 강팀의 레벨을 고르는 기준도 제각각이겠지만, 적어도 골밑과 외곽의 조화, 국내파와 외국인 선수간의 적절한 역할분담, 각 포지션별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수있는 시스템. 전성기 시절의 리그 장악력 등 모든 요소에서 99-00 시즌 SK는 어느 것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팀이었다.

용가리- 재키 존스- 조상현-로데릭 하니발- 황마담으로 이어지는 베스트 5는 정규리그 2위로 파이널에 올라, 당시 최강이라 불리우던 현대(지금의 KCC)를 시종일관 압도한끝에 4승 2패로 우승을 안았다. 비록 이 시즌 이후로 다시 우승컵을 가져간적은 없지만, SK가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객관적인 전력에서 그들은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팀으로 군림했다. 리그 장악력 면에서 팀 리바운드가 다른 팀의 배에 가까웠던 골밑의 우위만큼은 당시 독보적인 것이었다.

연세대 트리오였던 용가리-조상현-황마담은 90년대 중반 연세대의 두번재 농구대잔치 우승과 대학무대 44연승 신화를 이끌었던 주역이기도 했다. 우승을 차지하던해 2년차였던 용가리는 프로데뷔 첫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뽀록난 팀성적을 대신하여 기록에만 올인한 끝에 리바운드왕을 먹기는 했지만(뭐 물론 이것도 국내선수로서는 대단하긴 하다만), 소속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지금 삼성 감독이기도 한 당시 안준호 아저씨는 용가리-하마 듀오를 제대로 써먹어보지도 못하고 시즌중 모가지를 당해 최인선 아저씨에게 지휘봉을 강탈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 SK는 일약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의 우승을 이끌었던 만능 센터 재키 존스를 영입하며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로서 용가리-하마-존스라는 지금 기준으로도 손색없는 국내 최강의 트리플 포스트를 구축했기 때문이다.....라고 믿었지만 아쉽게도 2%부족했던 점도 없지 않아서, 세 덩치들의 골밑 포지션 중복에 비해 외곽에 믿을만한 슈터나 속공 피니셔가 없어서 당시 최강의 런앤건 팀이던 현대의 스피드를 상대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기록상으로는 좋았지만 도통 손발이 맞지않던 용가리와 하마간의 보이지않는 에이스 다툼도 장애 요인.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던 맞수 현대와의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패배하며 팀은 마침내 결단을 내리게 된다. 기량은 뛰어나지만 팀내 활용도가 어정쩡하던 하마를 골드뱅크(현 KTF)에 팔아넘기고 조상현+돈뭉치를 영입하여 '연세대 라인업'을 구축시킨 것. 당시 정교한 외곽슛와 내외곽을 휘젓는 뛰어난 속공참여능력을 가진 스윙맨 조상현은 SK의 우승도전에 화룡점정을 찍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조상현의 영입이후 SK의 중요한 변화는 현대에 지지않는 빠른 농구의 구축이었다. 국내 최고의 공격형 센터 용가리의 존재로 정통 하프코트 오펜스에서 SK는 이미 최강이었다. 여기에 달리는 스윙맨 조상현은 팀에 속공과 외곽슛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중심에는 탁월한 리바운더이자 만능 플레이어였던 재키 존스가 연결점이 되었다. 공수 모두에서 손색없는 리바운더 재키존스가 수비리바운드를 잡자마자 달라기 시작하는 조상현이 빨랫줄 같은 아웃렛 패스를 받아서 마무리짓는 속공 옵션은 이후 SK 공격의 핵이 되었다.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재키 존스는 탁월한 블록슛과 공격리바운드로 공수에서 용가리의 부담을 덜어주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3점슛 성공률이 40%를 상회할 정도로 슛거리가 넓은 선수이자 속공 센스까지 갖춘, 한 마디로 SK의 실질적인 에이스였다.
SK는 조상현 이후 달라진 팀 컬러를 바탕으로, 비록 정규리그 우승은 놓쳤지만 맞수 현대와의 대결에서 2승 1패의 우위를 점했을 뿐 아니라 파이널에서는 로렌조 홀-조니 맥도웰의 막강 포스트를 갖춘 현대를 골밑에서 시종일관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최전성기를 누리던 리딩가드 이상민이 하니발과 조상현의 그림자 수비에 막혀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After

경기외적인 악재만 없었더라면, 어쩌면 이후 3-4년간 SK의 왕조가 열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SK는 전성기 시절에도 일부 선수들의 지나친 판정불복과 거친 경기매너로 비호감 구단으로 단단히 낙인이 찍혀서 전국구 팀으로서의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 황마담과 조상현이 잇달아 군에 입대하고, 재키 존스가 불명예 퇴진하며 KCC로 건너갔으며, 용가리는 팀의 한계에 실망하고 삼성으로 보따리를 싸면서 매년 조금씩 헤체되기 시작한 SK의 막강 베스트5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었던 기간은 우승을 차지했던 99-00시즌 단 한해 뿐이었다.

지금도 호감-비호감을 떠나서 SK의 당시 선수구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개개인의 기량과 네임밸류만이 아니라, 베스트 5의 구성이 각 선수들의 단점을 커버하고 보좌해줄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라인업으로 짜여졌기 때문이다.

팀내 공격 비중이 높은데다 백코트가 굼벵이 수준이던 용가리의 약점을 커버하기에 재키 존스보다 이상적인 선수는 없었다. 재키 존스는 용가리를 대신해서 센터로서 리바운드와 상대 센터 수비, 블록슛등 궃은 일을 도맡아주며 용가리가 맘편하게 '미들질'을 할수있도록 지원사격했고, 황마담은 삼성 시절의 주희정과 달리, 하프코트 오펜스에서 용가리에게 가장 입맛에 맞는 패스를 찔러줄수있는 정통파 포인트가드 였다.

SK의 막강 베스트5가 해체된 이후, 그 중심에있는 선수들은 모두 하향세를 겪어야했다. 상무에서 복귀한 조상현은 유일하게 SK에 남았지만 잦은 부상과 스피드의 저하로 이제 예전만큼 과감한 돌파나 속공 마무리를 보여주지 못하는 평범한 슈터로 전락했다. 황마담은..... 한때 이상민,신기성,김승현의 쌕쌕이 트리오에 버금가는 특급 가드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나? 상무에서 복귀한 이래 지금은 가는 팀마다 아작을 내놓고 있는 가드계의 부도수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작금 LG의 부진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라인업이지만, 알고보면 이팀의 선수구성은 조우현 정도를 빼놓고는 문제가 많다. 뭐든 다 잘하는 것 같아도 알고보면 제대로 하는 건 하나도없는 영양가 부족의 플레이로 유명한 하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몇년동안 이름값에 걸맞는 플레이를 보여준 기억이 없는 병원 상근 선수 김용만에, 개인 플레이의 지존 황마담까지 가세한 LG는, 지난 시즌에 이어 한차원 진보한 밀레니엄 동네농구를 선보이고 있다.

이 무늬한 스타군단에서 조율을 맡아줘야할 막중한 임무야 어찌됐건, 초지일관 프로농구의 길바닥 리그화라는 사명에 충직한 황마담의 공으로 LG는 지금 콩가루 농구의 진수를 선보이고 있다.무슨 접착제나 블랙홀도 아니건만 공이 들어가면 당췌 나올줄 모르는 얼라들로 그득한 LG로서는, 이기고 지는걸 떠나서 제발 한경기내내 공이나 한번 제대로 돌리고 패턴이나 제대로 시도하는 꼴이나 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목돈에 올인하여 삼성에 이적한 용가리는 기록상으로는 꾸준한 활약을 보이며 자존심을 세운 것같지만, 차츰 떨어지는 신체적 능력속에 외국인 선수와의 대결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용가리의 플레이 스타일이 SK 시절과 크게 달라졌다고 보지 않는다. 국내 최장신 슈팅 가드라고 비아냥당하는 건 비슷하다만, 그건 국내파 센터로서 혼자 골밑에서 고군분투해야하는 체력적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재키 존스 이후 올해 올루미데 오예데지를 만나기 이전까지 용가리는 그간 파트너 복이 별로 없었다.재키 존스의 넓은 슛범위와 오예데지의 강력한 공격리바운드 등은 상대의 수비를 분산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전체 흐름에서 경기를 봤을때 상대가 누구든 용가리의 골밑 파트너가 그날 컨디션이 좋거나 슛빨좀 된다 싶으면, 용가리의 공격 루트도 좀더 다양해지는 것을 알수있다. 포스트업이건 드라이브인이건, 선택할수있는 옵션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가 안풀리고 마크가 격해질수록 용가리는 몸싸움의 체력적인 부담을 피해, '미들질'에 올인한다. 경기를 바깥에서 보고 야유하는 팬들과 달리, 직접 맨날 부대끼는 용가리 입장에서는, 외국인과 신체적 능력 차이를 절감하는 상황에서 단기전이라면 몰라도 장기 레이스에서 매경기 격렬한 골밑 싸움을 버티기에는 자신의 체력이 받쳐주기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용가리가 올해 오예데지와 존슨의 영입으로 다시 우승을 넘본다고는 하지만, SK시절과 비슷한 딜레마에 처해있다. 이팀은 높이보다는 빠른 팀에 속수무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맛탱이 안가고 제대로 된 외곽슈터나 속공 피니셔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다가, 골밑 기둥 세 마리 모두 달리기와는 과히 친해지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던지라 트레이드 데드라인전까지 런앤건에 대한 보강이 없으면 우승을 노리기는 힘들 것이다. 더구나 밤낮 목에 깁스를 하고다닐 정도로 부상과 체력 저하로 나날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용가리의 신체적 능력도 SK 시절과는 비교불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