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교정시설...(사건사고포함)

문재인...

최강동원 2013. 4. 15. 02:22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법조인 · 정치인이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부모가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으로 피난을 온 후 1953년에 태어났다.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경희대학교 법률학과 재학 시절,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감된 적이 있다. 집행유예로 출소한 후, 신체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군대에 강제징집되어, 육군훈련소에서 특전사로 차출되었다. 군복무 중 두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을 하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되지 않았다. 이후 변호사 노무현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오랜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부산광역시에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2003년부터 2006년 5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 2007년부터 2008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였고, 노무현 사후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을 맡았다. 2012년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 이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출마 선언을 하였고 경선을 통해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후보 박근혜에게 패배하였다.

목차

[숨기기]

[편집] 생애

[편집] 생애 초기

1953년 경상남도 거제군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슬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함흥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흥남시청 농업계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 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미군 군용 함정(LST)에 몸을 실어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피난해 왔다.[2] 그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하면서 가족을 먹여 살렸다. [3] 문재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2004년 문재인은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어머니 강한옥과 함께 북한에 살고 있는 막내 이모 강병옥과 이산 가족 상봉을 한 바 있다.[4]

[편집] 학창 시절

부산남항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예비고사 후기로 4년 장학금을 받아 경희대학교 법과대학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하여 당시 총학생회 총무부장로서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 유예 1년을 선고받고 경희대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 강제 징집되어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특전병으로 근무했다.

[편집] 사회 생활

제대 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0년 5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내려지면서 실시된 예비 검속으로 체포되어,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는 청량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받았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되었고, 노무현과 사법시험 동기인 박정규(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 역임)의 소개로 노무현을 만나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했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5]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림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6] 한겨레신문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고작 1백만∼2백만원대의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출처 필요]

[편집] 참여정부 시절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7]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7]

참여정부 초대 민정 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 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8]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9],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국정 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으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10]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11],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12]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13]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14],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15]

[편집] 참여정부 이후

[편집] 정계 입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 특수전사령부 출신,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등 이력으로 인하여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이 높은데, 2011년 8월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16],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

[편집] 2012년 대선 후보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17]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이후,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과반수를 넘겨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 대행이 되었다.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와 단일화를 추진하였지만,[18]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11월 23일 안철수가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19][20] 진보정의당심상정 대선 후보도 후보 등록을 앞두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그러나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약 100만표 차이로 새누리당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저의 역부족이었습니다. 패배를 인정합니다.[21]

[편집] 논란 및 의혹

  • 문재인은 2006년 부산 지역 기자들과 만나 "참여 정부를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 것 이해 안돼”, [22],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한 지역에서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 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역 감정 조장 발언이라면서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과 호남인을 대상으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22]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하승수 변호사는 문재인의 책 《운명》 중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 선정과 관련된 내용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중간저장하는 시설까지 포함하고 있었음에도 중·저준위 방폐장인 것처럼 서술하는 등 사실관계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23]
  • 문재인은 2011년 6월 14일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서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인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인규에 대하여 “검찰은 박연차 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대단히 건방졌다”고 주장했다.[24] 이런 문재인의 주장에 대해 이인규는 수사 태도에 대하여서 “당시 노 대통령을 처음 뵈었을 때도 내가 상석에 앉거나 태도를 건방지게 해서 조금이라도 언짢게 느낄 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 조사 전에 한 10분에서 15분 정도 함께 있으면서 차를 마셨는데 여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마쳤을 무렵에는 내가 직접 중수부 특별조사실로 올라가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20분 정도 선 채로 있었다. 그때 노 대통령은 앉아 계셨고 나는 예를 차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고 밝혔고, 문재인의 증거 주장에 대하여 “그날 조사 당일 오후 5시께 미국의 핀센이라는 기관에서 노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에서 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일종의 단서가 우리 수사팀에 도착했었다. 정연씨가 얼마짜리 주택을 구입했는지 금액을 특정할 수는 없고, 구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다만 수사의 단서로 쓸 수 있는 자료였다”고 밝혔으며, 노무현박연차와의 대질을 하려는 발상 자체가 무례하다는 문재인에 주장에 대하여서는 “두 사람의 말이 틀리니까 어느 쪽이 진실인가 밝히기 위해서는 당연한 절차 아니냐.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것이다”라고 언론에 밝혔다.[25]이인규는 문재인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검찰이 박 전 회장과 대통령 간 통화 기록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한 것에 대해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처음부터 대통령이 달라고 해서 (돈을) 줬다”고 진술, “박 전 회장은 2007년 6월 말 100만달러를 전달하기 전에 청와대 만찬에 초대돼 돈을 요구받았고, (돈을 준 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은 만찬에 혼자 초대받아 노 전 대통령 부부와 세 사람이 식사를 했을 때 권양숙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아이들(노건호씨와 노정연씨) 집이라도 사줘야 하는데…’라는 식의 얘기를 꺼냈고, 이 얘기를 들은 자신이 직원 130명을 동원해 환전한 100만달러를 측근을 시켜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은 또 돈을 전달한 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고, 고맙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박 전 회장과 정승영 사장의 청와대 출입 기록, 달러 환전 기록 등을 확보했으나, 박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통화 기록은 보존기간(1년) 경과로 이미 폐기돼 확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26]라고 조선일보에서 주장하고 있다.
  •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선대위 안형환 대변인은 문 후보가 지난 2003년 일부 지분을 갖고있던 부산 부민동의 상가를 팔면서 기준시가보다 9천여만 원 낮춰 신고해 '다운계약서' 작성에 따른 세금 탈루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문재인 후보 선대위 우상호 공보단장은 부민동 상가는 당시 법원·검찰청 이전에 따라 일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공시지가보다 1억 가까이 낮은 2억 3천여만 원에 손절매한 것이라며 '다운계약서' 주장은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27]
  • 한나라당 정진섭 의원은 2007년 4월 24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들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고용정보원은 ‘문재인 아들의 경우 외부 수상경력과 외국어 실력(TOEFL 250점) 등이 높게 평가됐다’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고[28], 문재인 측은 ‘동영상을 특정하지 않고 전산 부문으로 세부 공고를 한 부분이 오히려 특혜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29]
  • 2012년 11월 27일부터 TV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60초짜리 대선 후보 광고에 나오는 문재인 후보의 자택광고에 나오는 가죽의자가 "임스 라운지 체어"로 밝혀져 논란이 시작되었다. 문재인후보의 배우자인 김정숙씨가 트위터에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전시됐던 소파를 아는 분이 땡처리로 싸게 샀고 나중에 그걸 제가 50만 원에 산 중고”라고 해명했다.[30] 암스 라운지 체어의 미국 현지 가격은 4500달러 정도지만, 국내에서 중국산 OEM 제품은 50~100만원에 구할 수 있다.[31][32]

[편집] 약력

[편집] 저서

단독 저서
  • 《문재인의 운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30년 동지 문재인, 두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 가교. 2011년 6월 15일. ISBN 978-89-77771-88-8.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ISBN 978-89-97838-02-8.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8일. ISBN 978-89-01149-36-3.
공저
  •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오마이북. 2010년 5월 13일. ISBN 9788996430506
  •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9월 17일. ISBN 978-89-96489-82-5.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ISBN 978-89-96687-52-8.
  • 《만화 문재인》. 마이디팟. 2012년 10월. ISBN 9788967331740

[편집] 관련 서적

  • 휴먼스토리. 《문재인 스타일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낸 문재인식 리더십)》. 미르북스. 2011년 10월 17일. ISBN 9788997213030
  • 황상민. 《정치심리극장》. 리더스북. 2012년 9월 24일. ISBN 9788901150819
  • 조기숙. 《문재인이 이긴다》.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ISBN 9788996489634

[편집]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직책명대수기호정당득표율득표수결과당락
제19대 총선국회의원(사상구)제19대2민주통합당 55.0%65,336표1위사상구 국회의원 당선
제18대 대선대통령제18대2민주통합당 48.0%14,692,632표2위낙선

[편집] 가계도

강한옥
문용형
김정숙
문재인문재익
문준용문다혜
  • 아버지 문용형
  • 어머니 강한옥
    • 부인 김정숙
      • 아들 문준용
      • 딸 문다혜
    • 누나 문재월
    • 여동생 문재성
    • 여동생 문재실
    • 남동생 문재익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이동원 기자. “부산 사상 민주통합당 문재인 당선자자”, 《뉴스1》, 2011년 4월 11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2. 김진명 기자.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 가족 관계와 재산 들여다보니…”, 《조선일보》, 2012년 9월 17일 작성. 2012년 11월 30일 확인.
  3. 정미하 기자. “'운명' 마주한 문재인, 민정수석에서 대선후보까지”, 《아이뉴스》, 2012년 9월 16일 작성. 2012년 11월 30일 확인.
  4. 이영종 기자. “문재인 수석 북한 이모 만나”, 《중앙일보》, 2004년 7월 11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5. 박형남 기자.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항상 盧곁에서 이제는 홀로”, 《스포츠서울닷컴》, 2009년 5월 25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6. 배성재 기자 (2011년 10월 15일). "선상폭력이 빚은 조선족의 우발적 범행… '운명' 처럼 변호 맡았다". 한국일보. 2012년 12월 1일에 확인.
  7.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ilyo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8. 김범현 기자. “문재인 전 민정수석, 네팔로 여행 떠나”, 《오마이뉴스》, 2004년 2월 28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9. 윤경민 기자. “盧 대통령 변호인단 오늘 선임”, 《연합뉴스》, 2004년 3월 15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0. 염영남 기자.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실체적 권능의 2인자 행보로 구설수”, 《주간한국》, 2003년 6월 11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1. 서양원 기자. “문재인 비서실장, 직언 서슴지않는 대통령 복심”, 《연합뉴스》, 2007년 3월 9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2. 남도영 기자. “(노 前대통령 국민장) 위기마다 늘 곁에…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국민일보 쿠키뉴스》, 2009년 5월 25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3. 박종렬 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박종렬 교수의 제왕학) 문재인, 박근혜의 운명적 대항마인가?”, 《스포츠서울닷컴》, 2011년 6월 23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4. 강봉석 기자. “與, 국정자문위원회 대폭 확대”, 《기호일보》, 2006년 11월 6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5. 이종탁 기자. “(이종탁이 만난 사람)노무현 재단 상임이사 문재인 변호사”, 《경향신문》, 2010년 5월 17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6. 류정민 기자. “신동아 80주년 여론 조사, 문재인 1위 차지했다”, 《미디어오늘》, 2011년 8월 22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17. 문재인 고문 대선 출마 선언...경선 열기 고조YTN 2012년 6월 17일
  18. 야권 단일화 협상 개시 "국민 참여 단일화" vs. "박근혜 이기는 단일화"YTN 2012년 11월 13일
  19.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한 이유는?조선일보 2012년 11월 23일
  20. 안철수 후보 사퇴 배경은?‥단일화 의견차 좁히지 못해MBC 2012년 11월 24일
  21. 문재인 "국민들께 죄송…통합·상생 정치 당부"SBS 2012년 12월 20일
  22. 이성기 기자. “문재인 '부산정권' 발언 안팎서 뭇매”, 《서울경제》, 2006년 5월 16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23. 하승수. “(하승수의 눈)문재인의 오류”, 《주간경향》, 2011년 7월 19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24. 송수경 안희 기자. “`盧전 대통령 수사' 놓고 이인규-문재인 충돌”, 《연합뉴스》, 2011년 6월 16일 작성.
  25. 옥철 기자. “이인규 "노 前대통령에 충분히 예의 갖췄다"”, 《연합뉴스》, 2011년 6월 17일 작성.
  26. 이명진 기자. “"아이들 집이라도 사줘야 한다며 盧 전 대통령 부부가 돈 요구"”, 《조선일보》, 2011년 6월 17일 작성.
  27. 여야, 문 후보 부산 상가 ‘다운계약서’ 공방 KBS 2012년 11월 30일
  28. 김지성 기자. “"문재인씨 아들 취업 특혜"”, 《한국일보》, 2007년 4월 25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29. 이재희·박세익·이자영 기자. “(후보를 털어드립니다) ① 부산 사상구”, 《부산일보》, 2012년 3월 26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30. 조백건 기자. “"선택 12·19 SNS 핫이슈 "문재인의 노란 패딩, 79만원짜리인데 그건…"”, 《조선일보》, 2012년 11월 29일 작성.
  31. 문재인 의자 논란, 임스 라운지 체어는 어떤 의자길래… 2012년 11월 28일 아시아투데이
  32. 文후보 광고 속 의자, '고가 명품' 주장 제기되자2012년 11월 28일 조선일보
  33. 이기석 기자. “봉하마을의 전설은 계속된다”, 《오마이뉴스》, 2011년 5월 24일 작성. 2012년 6월 8일 확인.

[편집] 바깥 고리

전 임
이병완
제29대 대통령 비서실장
2007년 2월 ~ 2008년 2월
후 임
류우익
(대통령실장)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전 임
장제원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민주통합당
후 임
(현직)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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