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교정시설...(사건사고포함)

안상수...

최강동원 2013. 4. 15. 02:24

안상수(安商守, 1946년 2월 9일 창원 ~ )는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출신 법조인,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하여 총학생회 부회장 등을 지냈고, 197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되어 20년간 검사로 근무했다. 검사 사퇴 후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1996년 김영삼에 의해 발탁되어 신한국당 공천으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4선을 연임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조사한 담당검사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대표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지역구는 경기도 의왕시과천시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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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편집] 생애 초기

안상수는 1946년 2월 9일 경상남도 마산에서 기와공장을 하던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1952년 6·25가 끝난 후 아버지가 전염병으로 사망하면서 회사는 사기꾼들에게 넘어가고 어려운 유년생활을 보냈다. 마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한때 풍한방직에서 노동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편집] 검사 재직 시절

이 부분의 본문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입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되었다. 검사에 임용되었으나 학생운동, 노동운동 연루 경력으로 검사발령이 되지 않다가 전주지방검찰청에 발령되었고 그곳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마산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춘천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다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되었다. 서울지검 검사로 재직하던 1987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규명 수사를 맡아 당시 치안감의 은폐음모를 언론에 공개한 뒤 사표를 제출하고 노동운동에 투신, 노동자 법률상담에 종사했다. 경찰 고문으로 숨진 박군의 부검 현장에 입회해, 경찰이 은폐하려던 고문치사를 밝혀내는 데 ‘한몫’을 한 강직한 검사라는 명성을 얻었다.[1]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당시부장검사였던 최환은 당시 안상수는 당직검사였을 뿐이고, 부검 등 중요한 결정은 자신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해 안상수의 업적에 대한 논란은 남아있다.[2][3] 이 사건을 계기로 안상수는 1987년 사직서를 제출하고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제5공화국 당시 당직변호사 제도를 제안하여 신설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당직 변호사 제도로 무려 3,000여명을 무료 면담하여 한나라당 사이에서는 '인권의 파수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4]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공보이사 겸 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편집] 시민단체 활동

검사직 사퇴 직후, 경향닷컴 객원논설위원회 위원, 변호사회 회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1989년 서경석 등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출범에 참여하였다. 이후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입법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고, 한국유권자운동연합 발기인 공동대표로도 활동했다

[편집] 정치 활동

1996년 김영삼에게 발탁되어 정계에 입문, 그 해의 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신한국당의 공천으로 과천시·의왕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이후 4선을 연임하였다. 2007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2009년 5월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된 뒤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재선되었다.

2010년 6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을 거쳐 7월 당대표 최고의원에 선출됐다.

[편집] 이력

[편집] 기타 사건

  • 2008년 3월 11일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권'으로 규정짓고 사회 전반에 걸친 인적/제도적 청산 의지를 천명. 실질적으로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정부기관과 산하단체 인사들의 일괄 사퇴를 요구하였다.
  • 2009년 5월 27일에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직에 있을 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어 소요사태가 일어날지 걱정”이라고 말해 야당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5]
  • 2009년 7월 24일에 야당의 미디어법 장외투쟁과 관련 “등원거부, 거리투쟁과 농성, 국회법 무시, 폭력행사, 반대를 위한 반대, 이명박 정부 발목잡기에 전력을 쏟고 있는 게 제1 야당의 존재 이유냐 정권 퇴진이니 반정부니 하며 흑색선전[6]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민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7]
  • 2010년 3월 17일에 아동 성폭행 문제와 관련 “지난 10년간의 좌파 정권 동안에 엄청나게 편향된 교육이 이루어졌다”면서 “이런 잘못된 교육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많은 세력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그러한 흉악범죄들, 아동성폭력 범죄들까지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8] 이에 대해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성폭행범 문제가 소위 좌파교육 때문이라면 우파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에 교육을 받은 유영철(1970년생), 강호순(1969년생), 조두순(1952년생) 등이 저지른 연쇄살인, 아동 성폭행 등은 군사정권교육, 우파교육의 산물이냐"며 안상수의 발언에 대한 모순을 지적했다.[9]
  • 명진스님 좌파 발언 논란
    • 2010년 3월 21일에 조계종 총무원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10]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직후인 2009년 11월 13일 아침에 프라자호텔 식당에서 자승 총무원장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이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안상수 대표가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둬서 쓰겠느냐 말했다. 또 11월 30일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 당선 직후에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과 함께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자승 스님으로부터 안상수 대표가 좌파 주지 운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안상수 원내대표는 3월 22일에 “누가 명진 스님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른다. 봉은사 주지 스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압력을 넣느냐?” “일체 대응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명진 스님은 MBC 라디오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10여 년 전 안상수 원내대표와 석가탄신일마다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음을 밝히고, “날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11] 모임을 주선하고 같이 동석을 했던 김영국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도 3월 23일에 기자회견을 가지고 “명진 스님의 말은 모두 사실”이라고 확인을 했다.[12] 김영국은 한나라당 부대변인 출신을 맡았던 보수성향의 인물이다.[13] 그 후 한나라당 대표 출마선언을 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과 신도님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14]

  • 2011년 1월 26일, 안상수는 국립현충원에 방문하여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의 묘역을 방문했는데, 묘지의 제단인 상석을 밟아 비판을 받았다.[15]

[편집] 어록

  • 2010년 10월 27일 안상수는 "우리 한나라당은 젊은 대학생과의 소통이 너무나 부족하다. 한나라당을 수구꼴통 당으로 이해를 하고, 한나라당을 이야기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라며 한나라당의 별명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언급했다.[16]
  • 2010년 11월 1일 "검찰이 너무 지나치게 수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정치인을 너무 범죄인시 해선 안 된다"고 검찰청을 비판하였다.[17]
  • 2010년 11월 2일 안상수는 "30년 이상 좌파의 세뇌교육은 우리 국민과 청소년들에게 좌파의 정치적 선동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라며 개혁적 중도보수 정치세력의 필요함을 언급하였으며 어제 "또다시 노무현 정권과 같은 그런 정권이 들어선다면, 저 민주당 정권, 좌파정권이 들어선다면 결국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실패하리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18]
  • 2010년 11월 5일, "인터넷을 보면 한나라당을 욕하고 이명박 정부를 욕하는 게 깔려 있지 않은가"라며 "디지털 세계에서도 정면승부를 걸어서 반드시 1년 내에 이기도록 하겠다."라고 밝혀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려 하는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19] 이후 안상수는 중앙청년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저쪽 세력들과 인터넷에 들어와서 치열하게 싸워야 된다"며 거듭 인터넷에서의 여론전을 지시하기도 했다.[20]
  • 2010년 11월 30일,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연평도를 방문하여 불에 탄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의 영상이 YTN에서 보도됐다.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미필자의 눈에 포탄으로 보일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21]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영상이 YTN 측에서 연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YTN 돌발영상을 보면 마치 안 대표가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해 최초 발언한 장본인으로 보이지만, 촬영 전에 현장 안내자가 불탄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하고 안 대표에게 “북한군 포탄”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것을 들은 방송사 카메라기자들이 안 대표에게 “포탄이라고 말하면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해서 찍은 연출영상이라고 해명했다.[22] [23] 이 주장에 대해 YTN은 이 영상의 취재 과정에서 연출 요청은 없었다고 반박했다.[24] 2010년 올해의 다물어야 할 입으로 선정되었다.[25] 이 발언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으며 중국에도 보도되었다.[26]
  • 2010년 12월 9일, "적법한 국회절차를 지키고 국회의 의무를 다하는 것조차 폭력에 맞서야하는 일이 돼버린 오늘날의 국회 현실이 개탄스럽다. 폭력과 파행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역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회선진화를 위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국회의 기능을 개선할 것을 당부하였다.[27]
  • 2010년 12월 22일, 안상수는 용산의 한 장애인 시설에 방문하여 여기자 3명과의 오찬에서 "요즘 룸살롱에 가면오히려 '자연산'을 더 찾는다고 하더라"라며 성형 안한 여성을 자연산에 비유하였다. 옆에 있던 안희목 비서실장도 "압구정동에 가면 다 똑같은 코, 같은 공장에서 생산해서 그렇다"라고 발언하여 파문이 일었다. 이후 한나라당은 사과 논평을 내며 진화에 나섰지만 민주당은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28]

[편집] 수상

  • 1994년 9월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로상
  • 2010년 제4회 대한민국 나눔대상 대표상

[편집] 저서

  • <<안검사의 일기>>, 새로운사람들, 1998 [29][30]
  • 새로운 사람들
  • 이제야 마침표를 찍는다, 동아일보사, 1995

[편집] 함께 보기

[편집] 주석 및 참고자료

  1. 안상수 "요즘 젊은 세대, 민주주의의 소중함 몰라" 프레시안
  2. 이정환, "박종철 부검 주역은 최환, 안상수는 조연" , 오마이뉴스
  3. 정의길, 안상수라는 우파], 한겨레신문
  4. 차기 한나라 원내대표는 안상수(?)... ‘안상수 역할론’ 강조 폴리뉴스 2009년 2월 20일
  5. 안수찬 기자. “파시즘X의 탄생”, 《한겨레21》, 2009년 6월 12일 작성. 2009년 7월 1일 확인.
  6. 흑색선전(黑色宣傳)은 군사용어 중의 하나이고, 출처를 위장하거나 밝히지 않는 선전을 의미한다.
  7. 심인성 기자. “안상수 민생외면시 불량야당 퇴출 비판”, 《연합뉴스》, 2009년 7월 24일 작성. 2009년 7월 25일 확인.
  8. 강병한 기자. “"좌파교육 때문에 아동 성폭력 발생" 안상수 부적절 발언 논란”, 《경향뉴스》, 2010년 3월 16일 작성. 2010년 3월 17일 확인.
  9. "아동 성폭력이 좌파교육 탓? 연쇄살인은 우파 탓인가" 오마이뉴스 2010년 3월 17일
  10. 성연철, 조헌, 박수진 기자. “명진 스님, 안상수 대표가 주지 사퇴 압력”, 《한겨레신문》, 2010년 3월 21일 작성.
  11. 김현경 기자. “안상수 대표 해명은 거짓말”, 《MBC 뉴스》, 2010년 3월 22일 작성.
  12. 도재기·황경상 기자. “4인 회동 처음부터 끝까지 배석, 안상수 ‘좌파스님’ 지목해 당혹”, 《경향신문》, 2010년 3월 23일 작성.
  13.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rankingType=memo_week&oid=001&aid=0003184004&date=20100324&type=1&rankingSectionId=000&rankingSeq=4 연합뉴스
  14. 정효식 기자. “안상수 “명진 스님에게 유감””, 《중앙일보》, 2010.06.22 작성.
  15. 안상수 또 … 5·18묘역 상석 밟아 중앙일보 2011년 1월 27일
  16. 안상수 "대학생, 한나라당 수구꼴통으로 이해 미디어오늘 2010년 10월 27일
  17. 김화영 정윤섭 기자. “안상수 "정치인 너무 범죄인시해선 안돼" (종합)”, 《연합뉴스》, 2010년 11월 1일 작성. 2010년 11월 10일 확인.
  18. 안상수 또 “노무현 같은 정권 다시 서면 선진국 실패”
  19. 안상수 “한나라 욕하는 인터넷과 정면승부” 미디어오늘 2010년 11월 5일
  20. 안상수 "인터넷에 들어가 저쪽세력과 싸워라" 뷰스앤뉴스 2010년 11월 9일
  21. ‘군 미필’ 안상수, 보온병 들고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한겨레 2010년 11월 30일
  22. '보온병=포탄' 영상은 YTN이 연출한 것투데이코리아 2010년 12월 1일
  23. "안내자가 포탄이라 설명"... 안상수 '보온통 보도' 해명
  24. YTN “안상수 ‘보온병 포탄’ 조작설? 사실 아니다” 강력 법적대응 천명 한국경제 2010년 12얼 1일
  25. 안상수 대표, '올해의 다물어야 할 입'선정 2010-12-26 뉴시스
  26. 안상수 보온병"...세계 최고 개그 등극 아시아투데이 2011년 5월
  27. 안상수 "폭력국회 근절대책, 조속히 마련" 2010-12-09 뉴시스
  28. 한나라당 안 대표, 성희롱 발언 파문 mbc 2010년 12월 22일
  29.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9202
  30. http://www.ansangsoo.or.kr/images/about/Diary.PDF 안상수 홈페이지 제공 PDF

[편집] 바깥 링크

전 임
정몽준
제13대 한나라당 대표
2010년 7월 14일 ~ 2011년 4월 28일
후 임
홍준표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전 임
박제상
제15대 국회의원(과천시 · 의왕시)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신한국당
후 임
안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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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전 임
안상수
제16대 국회의원(과천시 · 의왕시)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후 임
안상수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전 임
안상수
제17대 국회의원(의왕시 · 과천시)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
후 임
안상수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전 임
안상수
제18대 국회의원(의왕시 · 과천시)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새누리당
후 임
송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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