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표된 경찰의 발표대로라면 이 사건은 아주 단순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종사촌 언니와 다른 3명의 피고인들이 정말 범인이었는지, 혹은 제3의 범인이 있었는지… 피고인들이 무죄를 주장하면서 사건은 가닥을 잡지 못하고… 10대 소녀가 범죄에 대한 호기심과 유흥비 마련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이종사촌동생을 유괴, 살해한 뒤 몸값을 요구하다 경찰에 붙잡혔던 1994년 10월 13일의 '강주영양 유괴살인사건' 강주영 양의 사체는 사촌언니인 李양(19)의 집 안방 책상 밑에서 보자기로 싸여있다 발견됐다. 사건에 관계되었던 범인은 李양을 비롯 이양의 남자친구 원종성(원철희 당시 시의회부의장 아들)씨와 이양의 고교동창인 남모양, 그리고 김철민씨 등 4명. 부산 해운대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 된 이들은 모 커피숍에서 "심심하고 용돈도 궁한데 재미삼아 한건 하자"는 원종성씨의 제안으로 이양의 이종사촌 동생인 주영양을 납치, 몸값을 요구하기로 하고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주영양을 꾀어, 원씨의 승용차로 조흥은행 남포동 지점옆 공터로 끌고 갔다. 이들은 강주영 양의 집에 전화를 해 "현금 2백만원을 부산극장 관람석에 갖다 놓으라"고 협박한 뒤 곧 이어 국제시장 부근 공터로 가서 이양과 남양에게 망을 보게 하고 승용차 안에서 김과 함께 주영양을 목 졸라 살해했다는 것. 이들은 경찰에서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범행을 시작했으나 주영이가 언니 이양의 얼굴을 알기 때문에 탄로가 날 것이 겁나 죽였다"고 말했다. 처음 발표된 경찰의 발표대로라면 이 사건은 아주 단순한 사건이었다. 4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밝히고 형을 구형하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공범으로 지목됐던 피고인들의 무죄 주장에 사건은 꼬여가기 시작했다. 이종사촌 언니와 다른 3명의 피고인들이 정말 범인이었는지, 혹은 제3의 범인이 있었는지, 이 첨예한 논란 끝의 1심 재판 결과는 이런 이유로 더 큰 의혹으로 자리잡았다. 1995년 2월 24일 진행된 이 사건의 1심 재판은 3개월에 걸친 13차례의 공판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나 결론은 검찰의 완패로 끝나 버렸다. 재판부는 원종성 피고인 등 3명이 제기한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와 가혹행위 주장을 모두 인정, 이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또한 이종사촌 언니였던 이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놀라움은 더 했다. 당시 이 피고인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다. 죄질의 경중을 떠나 미성년자인 피고인에게 사형까지 구형한 것은 너무 지나친 처사였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었다. 재판장을 맡았던 박태범 부장판사는 부산지법에 재직한 1년 여 동안 반인륜 범죄나 공무원 범죄 등 20여건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해'예측을 불허하는 럭비공 판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재판장 박태범 부장판사는 이날 이번 사건에 쏠린 비상한 관심을 의식한 듯, 이례적으로 선고내용이 결정된 과정을 방청객에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이 판결은 3인 재판부 전원의 합의는 아니다"라며 "3명이 충분하고도 격의없는 토론을 한 결과, 우배석 황규훈(주심판사)판사는 '피고인 4명 모두 진범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표결 결과 2대1로 확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검찰의 제3차 변론재개 신청에 대해서도 표결결과 2대1로 거부키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선고공판이 열린 부산지법 103호 법정에는 5백 여명의 방청객과 취재진이 몰려 좌석 2백40개를 꽉 채우고도 법정주변을 발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웠다. 재판부는 미국의 OJ심슨 재판처럼 이례적으로 TV카메라와 사진기자들에게 선고 공판정을 공개해 40여명이 카메라를 들고 취재경쟁을 벌였다. 판결문 낭독에 걸린 시간은 15분. 3명의 피고인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재판정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원피고인의 아버지 원철희씨(56)는 부인과 함께 "정의는 승리한다"며 만세를 불렀다. 남양의 어머니도 "너무 기쁘다"며 반겼다. 반면 사형이 선고된 이양의 어머니는 오열하며 재판정에 쓰러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경찰수사 과정에서의 가혹행위를 인정했다.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결국 검찰과 경찰이 "가혹행위를 통해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는 결과로 귀착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가혹행위 혐의로 고발된 북부서 경찰관 14명에 대한 수사 등 한차례 홍역을 치루게 됐다. 이 사건 재판은 갖가지 진기록을 남겼다. 13차 공판도중 98명의 증인이 소환됐고 수사 및 공판기록도 4천여쪽이 넘는다. 재판부 직권으로 현장검증도 재실시됐다. 검찰 구형이후 변론재개 신청이 받아들여져 한 사건에서 구형과 피고인 최후진술이 2차례 반복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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