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방화살인사건', 범인은 가까운 데 있었다.
[요즘판결 29] 기획사 대표 성폭행, 강원랜드 해고 사건
'요즘판결' 29번째 이야기다.
① 편의점 방화 살인 사건, 범인 알고 보니(광주지법 8. 6. 판결)
② 연예인 지망생 성폭행한 기획사 대표의 형량은 (서울중앙지법 8. 10. 판결)
③ 관리자에게 리프트 정비 맡긴 강원랜드 (서울행정법원 7. 20. 판결)
[판결①] 편의점 방화 살인 사건, 범인 알고 보니
▲ 미궁으로 빠질 뻔한 편의점 방화 살인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CCTV였다. 이미지에 들어간 편의점과 이 사건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 ||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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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광주시 소재 어느 편의점. 사장인 B씨(50대 여성)는 장사를 하다가 오후 10시가 넘어서 출근한 야간 아르바이트생과 교대를 한 뒤 편의점 안에 있는 창고 겸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오전 3시경 검정색 코트와 마스크를 착용한 키가 작은 여성이 무엇인가를 들고 편의점에 들어섰다.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갑자기 이 여성이 편의점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창고 쪽으로 가다가 여성과 마주쳤다. 여성은 "안에 불이 났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르바이트생이 창고를 확인해보니, B씨는 머리에 참혹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 채 숨을 거두었다. 창고 한쪽 구석에선 불길마저 치솟아 아르바이트생이 다급하게 112에 신고를 하는 사이, 문제의 여성은 편의점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한밤의 살인사건. 마스크를 쓴 키 작은 여성이 범인으로 유력하다. 하지만 이 여성은 누구이고,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미궁으로 빠질 뻔한 살인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CCTV였다. 경찰은 편의점과 인근에 설치된 CCTV 화면을 통해 사건발생 직전 이 여성이 인근에서 흰색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모습과 편의점 내부에서의 모습, 사건 직후 편의점에서 도주하는 장면 등을 확보했다.
사건은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났다. 범인은 가까운 데 있었다. 피해자 B씨의 아들인 C씨가 "범인은 A씨"라고 지목했던 것이다. C씨는 "특이한 걸음걸이에 신체 체형을 보니 A씨가 확실하다"고 진술했다. A씨는 사건 직전까지 C씨와 동거하던 사이였다.
아르바이트생도 A씨가 사건 당일 편의점에 들어온 여성과 동일인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그 전에도 A씨가 몇 차례 온 적이 있었는데, 말투와 눈매 때문에 바로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A씨는 범행시각에 집에 있었다면서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직후 A씨를 태워줬다는 택시기사의 증언은 A씨의 알리바이를 뒤집었다. 광주에서 경기도까지 3시간이 넘게 손님을 데려다줬는데 그 손님이 바로 A씨라는 것이다. 게다가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에 A씨의 신용카드로 택시 가스를 충전해준 사실까지 드러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A씨는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판결에 따르면 이렇다.
A씨는 C씨와 2년 넘게 동거해왔다. 그런데 B씨는 아들(C씨)이 A씨와 교제하는 것에 반대했다. C씨는 어머니(B씨)의 권유에 따라 A씨에게 관계청산을 통보하고, 다른 여성과의 결혼을 준비해왔다. A씨는 좌절한 나머지 B씨가 새벽녘에 편의점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을 알고 흉기와 경유를 준비하여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광주지방법원은 6일 A씨에게 살인과 현주건조물방화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은 "교제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하고 불을 지르는 등 범행 수법이 잔혹하며 생명을 앗아간 행위로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반사회적인 범행"이라고 평가했다.
법원은 또한 "피해자의 취침시간, 장소 등을 사전에 파악하고 경유 등을 미리 준비하는 등 계획적이고, 범행 후 범행을 은폐하고 자신의 억울함만을 강변하는 모습을 보여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중형 선고 배경을 밝혔다.
[판결②] '연예인 지망생 성폭행' 기획사 대표의 최후
▲ 통영 초등생 살해 사건과 제주 올레길 살해 사건으로 위치추적전자장치(일명 전자발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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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도 채 되지 않는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은 10일 성폭행한 혐의로 D씨에게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과 성폭력특별법(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등을 적용,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한 법원은 D씨에 대해 40시간 성폭력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인터넷상 정보공개를 명했다.
D씨가 범행장소로 주로 이용한 곳은 자신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10대의 여성 연예인 지망생들을 사무실로 불러 "내가 연예계에서 잘 나간다", "마사지를 해주겠다", "남자를 꼬실 수 있는 끼가 있어야 데뷔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성폭행을 하거나 강제추행을 일삼았다.
법원은 "연습생 채용, 전속계약 체결, 방송 데뷔, 출연 일정 등 연예활동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과 재량권을 가지고 있던 피고인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고자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나이 어린 피해자들을 성적 노리개인 양 지속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적 자존감을 유리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법원은 D씨가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사적 친분을 형성할 여지도 없었던 피해자들이 30년 이상 연령 차이가 나는 피고인에게 성적 호감 또는 관심을 표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또는 동의하에 성관계를 허용하였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지난 9일에는 대구고등법원에서는 연예기획사 직원을 사칭하여 성폭력을 저지른 30대 남성의 항소심 판결이 내려졌다. 이 남성은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만 13세의 소녀에게 "연예인이 되려면 무리하게 성관계를 요구해도 응해야 한다"고 속여 간음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항소심인 대구고법은 "피해자의 주거지를 찾아가 착각에 빠져 있는 피해자를 간음까지 하였는바,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나 수법, 피해 결과 등에 비추어 그 죄질이 몹시 나쁘고, 죄책 또한 중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런 사건이 생기면 연예기획사 종사자들에게 향하는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물론 대다수 기획사는 그러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는 청소년들의 희망이 나쁜 어른들에게 짓밟히고 이용당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판결③] 인사팀 간부에게 스키장 리프트 정비 맡긴 강원랜드
E씨는 10년 이상 대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아 강원랜드 인사기획팀 과장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이듬해 레저영업팀으로 발령받았고 그 다음해에는 차장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회사는 어느날 그에게 스키장 리프트 그립(리프트와 와이어를 고정시켜 주는 부품) 정비를 맡겼다.
E씨는 "내 직급이나 경력과 맞지 않는 업무"라고 반발하며 출근은 했으나 한 달 넘게 업무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원랜드는 "E씨가 정당한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며 징계해고하였다. E씨는 부당해고라며 구제신청을 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강원랜드에 원직복직을 명했다. 그러자 이번엔 강원랜드가 "해고는 정당하다"며 다시 법원에 소송을 냈다.
강원랜드는 "E씨에게 다양한 업무경험을 쌓게 하고, 관리소홀의 책임이 있어 자기반성의 기회를 주고자 정비업무를 지시했는데도 업무를 거부하고 보직변경을 요구했다"며 해고가 불가피했음을 강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E씨의 손을 들어줬다. 왜일까. 법원은 "해고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하여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그런데 E씨에게 해고를 용인해야 할 정도의 책임 있는 사유가 있지는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E씨가 변경된 업무(리프트 정비)를 수행하지 않은 것이 징계사유는 될 수 있다고 법원은 보았다. 하지만 ▲ 정비업무는 위험하거나 기술을 요하는 부분도 있고 비숙련자가 담당하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점 ▲ E씨의 기존 업무에 비추어 상당히 이질적이고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과장의 지시를 받아야 했던 점 ▲ E씨가 이 업무를 해야 할 특별한 필요성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업무지시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업무지시가 부적절한 측면이 있었던 이상,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출근을 계속해왔던 E씨에 대한 해고는 부당하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서울행정법원은 7월 20일 강원랜드가 낸 부당해고구제재심 판정취소 청구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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