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일가족 생매장 살해범 4명 중 한명 이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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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건 내 용
1990년 11월 11일 오후 1시 반경.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싸리봉 비슬계곡에서는 경찰과 취재진, 유가족과 주민 등 무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체발굴이 이뤄지고 있었다.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횡성을 잇는 6번 국도에서 10여km 떨어진 이곳은 평소 한낮에도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범인의 지목에 따라 경찰이 조심스레 땅을 파내려가기를 수 분째, 흙더미와 돌덩이 아래에서 사체들이 줄줄이 발견됐다. 피해자들은 손발이 나일론 끈으로 결박되고 재갈이 물려진 상태로 두 곳에 나뉘어 묻혀있었는데 머리와 안면에 심한 타박상이 있고 목뼈가 부러져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특히 뒤로 손이 묶인 채 쪼그려 앉은 자세로 발견된 여아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피해자들은 노인 두 명과 중년남자, 다섯 살짜리 여아 등 총 4명으로 이들은 11월 9일 친척 고희연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일가족 4명이었다. 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약 20년 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일명 ‘양평 일가족 생매장사건’이다. 일가족 4명을 상대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친구 사이인 윤정필(가명·31), 오성환(가명·32) 이영준(가명·30), 그리고 이 씨의 애인 심혜정(가명·22) 등 4명이었다. 당시 수사기록과 김 연구관의 설명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특별한 직업이 없이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던 윤정필 일당은 젊은 나이에도 빛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윤정필과 오성환은 인천의 한 중학교 동창이었다. 사건 발생 몇 개월 전 오성환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이영준을 윤정필에게 소개했고 비슷한 처지였던 이들 셋은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인천 출신인 이들은 평소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피우며 어울려 다녔는데 이미 강도상해 등으로 각각 5~8차례의 전과가 있었다. 이들은 매일 밤 유흥과 향락에 빠져 대책없이 지냈다. 문제는 돈이었다. 직업이 없던 이들에게 수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수중의 돈이 떨어지자 유흥비 마련을 위해 범행을 공모하던 이들 삼인조는 1990년 10월 28일 강릉 경포대로 소위 ‘원정범죄 여행’을 떠나기로 뜻을 모은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었지만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행 중 한탕 크게 해서 여행경비도 마련하고 목돈도 챙겨보자는 것이 이들의 의도였다. 이들은 이날 오후 5시경 5만 6000원을 주고 프린스 승용차를 빌려 경포대로 향했다. ‘범죄여행’에는 그해 여름부터 사귄 이영준의 애인 심혜정도 동행했다. 이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경포대의 한 여관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이들은 29일 오후가 되자 범행대상을 찾아 나섰다. 오후 7시 반경, 일당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포대로 신혼여행을 온 김영욱 씨(가명·27) 부부였다. 이들은 우럭바위 앞에서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김 씨 부부를 흉기로 위협한 뒤 미리 준비한 나일론 끈으로 부부의 손발을 결박했다. 그리고 신랑은 자신들의 렌터카 트렁크에, 신부는 신혼부부가 타고 온 승용차 뒷좌석에 나눠 태운 뒤 현장에서 9km 떨어진 야산으로 향했다. 신혼여행을 왔다가 변을 당한 김 씨 부부가 느꼈을 공포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들은 현금과 수표 등 260만 원과 패물, 승용차 등 800여 만 원에 달하는 금품을 뺏은 뒤 부부를 소나무에 묶어놓고 달아났다.”
빼앗은 돈은 즉석에서 배분해서 나눠가졌다. 그날 새벽 경포대를 떠나 주 활동무대인 인천에 도착한 이들은 범행성공을 자축하는 의미로 새벽까지 유흥가를 돌며 광란의 밤을 보냈다.
이들의 원정범죄는 일단 완전범죄로 보였다. 당시 김 씨 부부로부터 신고를 받은 강릉경찰서가 수사에 들어갔지만 이렇다 할 단서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범행 이틀 후인 11월 1일 저녁 8시 30분경, 일당 중 한 명인 이영준이 애인 심혜정과 함께 훔친 김 씨 부부의 엑셀 승용차를 타고 인천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택시와 추돌사고를 낸 것이었다. 사고처리 과정에서 훔친 차량임이 들통날 것을 우려한 두 사람은 도주를 시도했다. 택시기사가 소리를 지르며 뒤쫓아가자 이영준은 흉기를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하다가 차를 버리고 그대로 도주했다.
경찰은 이영준이 버리고 간 승용차에서 그의 애인 심혜정 명의의 예금통장과 가스총을 발견했다. 단순 교통사고범으로 보기에는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경찰은 통장 명의자인 심혜정의 주소지를 알아내고 연고지관할인 대전 동부경찰서와 공조수사에 들어갔다.
한편 뺑소니로 인해 차량 수배가 내려졌을 것을 짐작한 이들 일당 4명은 며칠간 떨어져 지내며 경찰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들이 다시 모인 것은 7일 오전 10시경. 신혼부부로부터 빼앗은 돈을 유흥비로 모조리 탕진한 이들은 또다시 범행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안양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들은 또다시 위험한 범행을 공모했다. 이 자리에서는 경포대에서 신혼부부를 그냥 살려준 것을 자책하는 얘기가 나왔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앞으로는 범행 후에 대상을 무조건 살해하기로 뜻을 모았다.”
범행모의를 마친 이들 일당은 이날 오후 쏘나타 승용차를 빌렸다. 그리고 충청도, 경상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승용차 번호판 5개를 훔쳤다. 틈틈이 번호판을 바꿔 달며 밤새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니던 이들은 8일 오후 3시경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에 도착, 하룻밤 민박을 했다.
다음날 정오까지 늦잠을 잔 이들은 범행 개시를 위해 민박집을 나섰다. 이들이 택한 범행장소는 한적한 국도변이었다. 렌터카를 몰고 양평군 청운면 갈운리 6번 국도변을 주행하며 범행대상을 물색하던 이들의 눈에 쏘나타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친척 고희연에 참석하기 위해 강원도 평창으로 가던 유재범 씨(가명·54) 일가족이 탄 차량이었다. 당시 차량 안에는 운전자 유 씨를 비롯해 유 씨의 老母(84)와 老母의 여동생(74), 그리고 외손녀 최정민 양(가명·5)이 타고 있었다.
차량에 노인과 어린아이가 타고 있어 범행이 수월할 것으로 판단한 윤 씨 일당은 주변에 지나가는 차량이 없음을 확인한 뒤 자신들의 차로 유 씨의 차량을 가로막아 세웠다. 장정 3명이 노인 두 명과 50대 남성 한 명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두려움에 울부짖는 다섯 살 여아는 이영준의 애인 심혜정이 담당했다. 일가족을 흉기로 위협한 일당은 미리 준비한 나일론 끈으로 일가족의 손발을 결박하고 입에 재갈을 물려 제압했다. 자신들의 차량 트렁크에 유 씨의 老母 등 노인 두 명을 집어넣는 등 두 대의 차량에 일가족을 나눠 태운 범인들은 전날 민박을 했던 집에 찾아가 “아버지 산소에 간다”며 삽 두 자루를 빌렸다. 그리고 납치현장으로부터 27km 떨어진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의 계곡으로 차를 몰았다.
약 50분 후 인적 하나 없는 국도변에 차를 세운 일당은 각자 한 명씩 들쳐 메고 야산으로 올라갔다. 어린 최 양은 심혜정이 안았다. 어른 3명을 20m 아래로 밀어뜨려 기절시킨 일당은 구덩이를 판 뒤 실신한 이들을 산 채로 암매장했다. 또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최 양마저 생매장했다. 일가족 4명을 생매장한 이들은 그날 저녁 안양으로 올라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술을 마시고 오성환의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일당은 오성환의 애인이 사는 대전으로 가기로 하고 미리 연락을 취해놓은 뒤 10일 오후 1시경 대전에 도착했다.
한편 고희연에 참석차 집을 나섰던 일가족이 실종되자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사건을 보고받은 경기지방경찰청은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강릉경찰서 수사팀들은 강릉신혼부부 강도사건 수사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수사과정에서 현장 주변에 사는 한 중학생으로부터 “경기 XXX 34XX 승용차가 범행지점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한 수사팀은 번호차량 수배를 내리고 차적지 수사에 들어갔다.
이 무렵 인천에서 이영준이 사고를 낸 후 버리고 달아난 승용차의 차적조회를 실시한 수사팀은 공조수사결과 문제의 차량이 강릉에서 변을 당한 신혼부부의 것이라는 결정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교통사고법 위반으로 수배를 당하던 이영준은 자연스럽게 강릉신혼부부 강도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수사는 아연 활기를 띠었다.
수사팀은 이영준이 몰던 차에서 발견된 심혜정의 예금통장을 통해 이영준의 신원을 확보했다. 이 씨는 전과 8범이었다. 강릉 신혼부부가 빼앗긴 수표가 사용된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술집을 찾아간 수사팀은 종업원들로부터 수표를 사용한 일당 중 한 명이 이영준이라는 진술을 확보, 그를 강릉 신혼부부 강도사건의 범인으로 단정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수사팀은 범인이 세 명의 남자였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공범들에 대한 추적에 들어갔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수사팀은 사고차량에서 발견된 가스총을 단서로 인천시내 가스총 판매소를 일일이 탐문, 윤성필의 신원을 확보했다. 또 심혜정의 친구로부터 오성환의 신원도 파악했다. 수사팀은 범인들의 동선파악을 위해 이들의 주변인물들과 폭넓게 접촉했다. 그 무렵 일당은 오성환의 애인 집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이영준의 애인 심혜정은 친구 A 양(21)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지리산에 놀러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A 양이 경찰에 제보를 했다. 약속장소인 호텔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던 수사팀은 10일 오후 1시 20분경 2대의 승용차에 나눠 탄 일당을 발견, 권총사격 끝에 그 자리에서 오성환과 심혜정을 검거했다. 그러나 나머지 일당은 총상을 입고 그대로 달아났다.”
신혼부부 납치강도사건의 범인으로 이들을 검거한 수사팀은 이후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낸다. 먼저 검거한 오성환과 심혜진을 검거한 수사팀은 이들이 타고 다닌 차량의 트렁크에서 흙이 묻은 삽 등을 발견, 이들을 추궁해 유 씨 일가족 살해사건을 밝혀낸 것이다.
나머지 일당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대전을 빠져나와 서울 도림동의 친구집에 숨어있던 윤성필은 11일 밤 주민의 신고로 검거됐다. 수사팀은 또 이영준이 도피 당시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는 윤성필의 진술에 따라 인근을 수색했고 12일 오전 9시 15분경 가오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숨져있는 이영준을 발견했다.
경찰조사에서 이들은 돈이 필요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유 씨 일가를 살해한 이유에 대해 이들은 “증거를 없애 완전범죄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는데 “강릉에서 신혼부부를 살려주는 바람에 경찰에 쫓기게 됐다. 잡히지 않을 수 있었는데 분하다”고 말해 경찰을 분노케 했다. 하지만 이들이 노인과 유아를 포함한 일가족 4명을 죽이고 손에 쥔 것은 단돈 20만 원에 불과했다.
당시 수사팀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이들이 일가족 4명을 산 채로 암매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사체검안 결과 피해자들의 기도에 흙먼지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가족을 생매장한 엽기적이고 잔인한 범행수법보다 수사팀을 더욱 큰 충격에 빠뜨린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당시 윤성필이 네 살 난 딸을 둔 가장이었으며 오성환 역시 두 아들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었다.
윤성필과 오성환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각각 92년, 94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범죄에 가담한 심혜정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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