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교정시설...(사건사고포함)

[스크랩]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가려진 1989년 심영구 사건

최강동원 2013. 6. 3. 00:33

1989년 심영구 사건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언론에는 별로 다뤄지지 않았지만이 또한 대표적인 살인사건으로 꼽기에는 부족함이 없는듯 하다.- 89년 당시 출소를 마치고 나온 심영구는 수중에 가진 돈이 떨어지자금전을 목적으로 범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총 9차례에 걸쳐서 서울과성남, 구리 지역을 배회하며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이 사건의 대부분은 금전을 목적으로 한 살인이 대부분이지만 평소사진을 무시하던 지인을 단숨에 죽이기도 한 경우도 있었다.- 총 8명이 이 사건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번엔 심영구 사건입니다. 경기남부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속칭 화성연쇄살인사건)에 가려진 또다른 사건입니다.

표창원 교수님의 글(한국의 연쇄살인)에 의하면 이 사건은 범인이 치밀한 계획도 없었고 증거인멸 시도도 없었지만

당시 우리사회가  피해자의 고통 하나하나에 귀를 귀울일 여력이 부족하여 치밀한 수사가 되지 않은점에

안타까울 따름 이라고 합니다.

 

심영구는 8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악질 살인마 이지만 당시 신문에는 조그맣게 신문 단면에 실렸었다고 하네요. 그럼 심영구 사건이란 어떤것인지 오늘도 낱낱히 파헤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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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의 범죄패턴

성남-성남-서울-성남-성남-서울-구리-서울-성남

 

 

(당시 시대적 여건상 단순사건 기사에 기재되었던 심영구 활동당시 보도기사)

 

1990년 살인마 심영구 구속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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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는 누구인가?

1960년 충북 제원에서 태어난 심영구는 포악한 아버지의 학대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중학교 1학년 때 무작정 상경한 심영구는 구두닦이, 식당 종업원 등을 전전하며 살아가다가 스물여섯 살이던 1985년 강도상해죄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 후에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심한 폭력에 시달리다 보니 심각한 정서적 문제와 욕구 불만이 축적된 데다가 청소년기에도 우호적이지 않은 생업 현장에서 ‘부정적 사회화’ 과정을 겪었다. 또한 늘 약자 입장에서 무시당하고 갈취 당하고 짓밟혀온 분노와 열등감, 피해 의식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성인이 된 심영구는 술에 의지해 억눌린 욕구와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 내려 했으나 음주 후에는 오히려 공격성과 폭력성이 두드려져 문제만 일으켰다. 범행 과정에 대해서도 목적은 돈이었지만, 피해자를 대하면 찌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일단 한번 찌르고 나면 이성을 잃고 마구 찌르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범죄패턴 : 성남-성남-서울-성남-성남-서울-구리-서울-성남

<1차 범행>

성남 미장원 강도

3년이상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심영구는 출소후 가지고 있던돈을 탕진하자 새벽 1시 20분 성남시 태평동 소재의 미장원에 칼을 들고 들어가 이씨(23세)의 목과 가슴을 마구 찌르고 가게에 있던 현금 7000원을 훔쳐 달아난다.다행히 이웃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후송되어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이씨는 어둠으로 인하여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했다.

 

<2차 범행>

성남 골목길 살인

새벽 4시 30분경, 심영구는 범행대상을 못찾고 귀가하던중 집앞 신흥동 골목길에서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술집주인 신씨(42세)와 마주치게 되고 심영구는 신씨의 몸을 마구 찔러 살해 하지만 목격자는 없었다.

 

<3차 범행>

서울 관악구 살인

2차 범행 5일후 새벽 2시 30분경, 관악구 거리를 배회하며 범행대상을 물색하던중 일을 마치고 귀가중이던 술집주인 김씨(42세)가 눈에 띄자 심영구는 뒤로 다가가 등을 마구찔러 살해후 손가방을 뒤져 1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이 역시 목격자는 없었다고 한다.

 

<4차 범행>

성남 골목길 살인

두달을 숨어 지내며 10만 원을 다 쓴 심영구는 새벽 1시경 성남시 단대동을 배회하던중 가게를 마치고 퇴근하던 김씨(43세)를 발견하게 되고 어느 정도 미행하다가 아무도 없는 골목에 이르자 등과 어깨를 마구 찔르고 살해한후 주머니를 뒤졌지만 돈이 나오지 않자 그대로 도주.역시 목격자 없음

 

<5차범행>

성남 골목길 살인 그리고 차량 절도 

4차뱀행이 일어난지 5개월 후 새벽 2시 성남시 수진동에서 50대 남자가 검은 손지갑 꾸러미를 들고 가는것을 발견한 심영구는 골목길에 다 다르자 등을 찔러 살해후 손지갑을 열었으나 그것은 성경 책이었다.피해자는 심야기도를 마치고 귀가 하던 중이었다.허탕을 친 심영구는 집 근처에 주차중인 차량 유리를 부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6차범행>

서울 종로 노점상 살인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범행대상을 물색중이던 심영구는 돈을 세고있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시야에 들어왔다.때마침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틈을 타 심영구는 현금 17만원과 버스 승차권  240장을 훔쳐 달아났다.

 

<7차 범행>

구리시 노점상 살인

구리시 토평동에서 장사를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던 노점상 이씨(57세)를 등을 마구찔러 살해후 그날 매상의 가방을 훔쳐 달아났다.

 

<8차범행>

종로구 살인, 차량 절취

밤 9시 종로구 창신동 근처의 주차장에서 심영구는 주차중이었던 운전자(29세)에게 시비를 건후 칼로 찔러 살해후 차량을 몰고 도주했다.

 

<9차범행>

성남 살인미수와 검거

성탄절날 심영구는 외로움에 잠을 청하지 못하여 뒤척거리던중 슬리퍼와 운동복 차림으로 새벽 4시경 집을 나섰다.눈에 띈곳은 불이 켜져있는 집앞 슈퍼마켓. 30대 정도의 여주인이 있는것으로 판단한 심영구는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여주인을 주행하기 시작했지만 여주인은 악을쓰며 반항하였고 그소리에 놀란 아들(11세)

이 심영구에게 달려들었지만 심영구는 칼로 어린아이를 마구 찔러댔으나 여주인의 비명에 주위사람들이 몰릴까 두려워 그대로 도망쳤다.여기서 심영구는 슬리퍼 한짝을 현장에 떨어뜨린채 도주했다. 출동한 경찰이 아이를 병원에 후송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숨지고 말았다.경찰은 한달동안 슬리퍼 대조결과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판잣집에 애인과 함께 있던 심영구를 검거한다.

 

 1992년 심영구 사형집행 기사

 

심영구 사건의 의미

심영구 사건은 ‘주로 심야에서 새벽 사이에 마구 공격해 살해하고 금품을 훔쳐간다’는 기본적인 모양이 김대두 사건과 흡사하다. 비록 피해 대상과 장소, 범행 도구와 결박 여부 등 방법에서 차이가 나지만 김대두 사건을 제대로 분석해서 ‘범죄자의 어떤 특성이 범행의 어떤 면으로 이어졌는가?’ 에 대한 다양한 답을 구한 뒤 수사 자료로 남겨두었더라면 좀더 일찍 해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쇄살인범들은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학력도 낮고 성격 이상에 사회 적응에도 문제가 있으며, 그리 지능적이거나 뛰어난 기술을 갖지 못했다. 범행을 할 때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범죄 경력, 이상 심리와 욕구들을 감추지도 못한다. 수사 경찰이 시국 치안이나 정치, 승진 등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오직 수사 기법 개발과 사건 해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수사에 매진한다면, 조기에 찾아내서 검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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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사건(1) " 희대의 살인마 심영구"

 

1989년이었을 것입니다.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에서 룸싸롱을 운영하던 40대 S여인이 새벽에 영업을 끝내고 귀가중 성남초등학교 건너편 건물과 건물 틈사이에서 칼로 전신을 난자 당한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체 상황이 너무 잔인하고 가슴과 치부를 도려내는 것으로 보아서 치정이나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수사의 촛점이 모여졌고 수사본부를 차리고 다각적이고 광범위한 수사를 전개하였지만 미궁에 빠졌습니다.

 

그 후 같은동 소재 성호시장에서 오락실을 운영하는 40대 k모 여인이 새벽에 귀가 중에 금광동 성남대로변에서 칼로 난자당한 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지요.

 

세번째로 성남시 수진동 성남 소방서 건너편에서 새벽예배를 보러가던 50대 k모씨(남)가 등을 흉기로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지요,

 

그리고 모 미용실에서 강도 치상 사건이 발생했는데 일견 보기에 첫번째 사건은 사체 상황으로 보아 치정 또는 원한에 의한 사건으로 보여졌고, 두째, 세째 사건은 강도살인으로 보여지면서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미용실 강도사건은 노상에서 발생하였던 기존의 수법과는 상이하여 동일범의 소행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앞서 세건의 살인사건은 모두 수사본부가 차려졌고 치정, 강도, 원한등 여러방면으로 꽤 열심히 수사했지만 미궁에 빠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J슈퍼에 침입 강도 사건이 발생하여 반항하는 여주인 성추행하려다가 격렬히 반항하자  칼로 찌르고 다급히 도주하면서  신발 한짝을 남겨두고 도주하였고 이를 단서로 탐문수사 중에 당시 30세였던 심영구를 검거하였는데 놀랍게도 위에 열거하였던 사건 외에 서울, 구리 등지에서 5건의 살인사건을 더 저지른 것을 밝혀냈습니다.

 

순하게만 생겼던 심영구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사람의 목숨을 너무 경시하였습니다.

서울에서는 토큰 몇개 빼앗으러 길가에 마련된 가판대에서 할머니를 찔러죽였고,

남의 차안을 기웃거리다가 차 주인이 "당신 뭐하는 거냐"고 하자 칼로 찔러 죽였고,

서울에서 성남으로 오는 버스를 탄다는게 남양주가는 버스를 잘못타서 교문리에서 내렸을 때 함께 내린 여성을 뒤 따라가 찔러 죽이기도 했지요.

 

새벽에 가방을 들고가는 사람들이 영업을 끝내고 귀가하니까 가방 속에 돈이 많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범행을 했다고 자백했는데 사실 영구가 8명을 죽이고 미수에 그친 2건의 사건 모두에서 빼앗은 돈은 불과 몇 십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심영구는 1992년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심영구가 저지른 살인사건과 강도상해사건을 수사 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올라 조사를 받았고 더러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까지 받아야 했었지요.

성남 관내에서 발생한 3건의 살인사건의 수사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수사대상에 올라 심적 고통을 당하신 분들께는 새삼 죄송한 마음을 수사에 협조해주신 많은 분들께는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며,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께 고개숙여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봅니다.

출처 : 미제사건추적-그들은살고싶었다
글쓴이 : 아름다운현후_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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