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교정시설...(사건사고포함)

[스크랩] 2004년 석촌동 연쇄살인사건 - 이병주 이진구

최강동원 2012. 10. 6. 20:17
"마약에 취한 채 범행"

들통한 완전범죄(?) 연쇄살인 1830일<스토리>

편지 한 통에 담긴 ‘살인의 추억’ 그림자

출처 : 일요시사 2009년07월28일

 

5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석촌동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이전에 4명을 더 살해한 사실이 드러났다. 묻히는 듯했던 이들의 여죄가 드러난 것은 편지 한 통이 화근이었다.

 

이들 일당은 밝혀지지 않았던 살해사실을 적은 편지를 옥중에서 주고받다 편지를 읽은 또 다른 수감자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범행을 할 때마다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5년 전 살인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범인의 여죄 드러나
공범과 주고받은 편지 속에 살인사실 내용 담겨 들통


“세월이 갈수록 (살해한) 사람들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
살인을 저지른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이모(43)씨는 자신과 함께 범행을 저질러 복역 중인 또 다른 이모(63)씨에게 위의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본 것은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수감자가 편지를 보고 있었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감춰졌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면 위 부상한 미제사건 진실

웃지 못할 사건의 주인공인 두 이씨는 이미 5년 전에도 잔혹한 범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바 ‘석촌동 상가 연쇄 살인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것. 두 사람은 2004년 12월8일 낮 1시, 서울 송파구 석촌동 모 상가 3층의 전당포에 침입해 금품을 털다가 이에 반항하는 전당포 주인을 둔기와 흉기로 살해했다. 또 살인현장을 목격한 인근 비디오방 종업원을 쫓아가 살해했다. 당시 대낮에 벌어진 잔혹한 ‘묻지마 살인’에 세간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범인은 좀처럼 잡힐 줄을 몰랐다. 그러는 사이 두 이씨는 성형외과에 침입해 의사를 흉기로 위협하고 돈을 빼앗는 등 10여 차례에 걸쳐 강도행각을 하며 도망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강도짓으로 빼앗은 수표를 쓰고 다닌 것이 화근이었다. 경찰의 추적 끝에 강도행각이 들통 났고 살인사실까지 드러난 것.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2004년 초 막노동판에서 만나 필로폰을 함께 투약한 것을 계기로 친해진 뒤 병원, 전당포 등 현금을 많이 보관하는 업소를 골라 강도짓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들은 살인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철창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08년 8월, 43세의 이씨는 63세의 이씨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이 편지에는 “2004년 방이동 빌라에 들어가 부녀자 2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편지를 본 것은 이씨뿐만이 아니었다. 우연히 또 다른 재소자 A씨가 이 편지를 읽었고 편지에서 본 내용을 적어 경찰에게 보냈던 것. 덕분에 4년에서 10년 이상 미궁에 빠져 미제사건으로 빠질 뻔했던 4건의 살인사건 전모가 밝혀졌다.

먼저 43세 이씨는 2004년 10월 다른 이씨 집에 가던 중 송파구 방이동의 한 빌라에 가스 검침원이라고 속이고 들어가 김모(56·여)씨 등 2명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그는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였으며 빌라에서 훔친 현금카드로 50만원을 인출했다. 그는 경찰에서 “집에 들어가 흉기로 위협하는데 여자들이 나를 공격한다는 환상이 생겨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당시 현금인출기 CCTV에 모자와 마스크를 쓴 용의자의 모습이 찍혔지만 수사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어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다.

그러다 편지의 내용을 본 경찰이 부검기록과 사건기록을 면밀히 살펴본 뒤 43세 이씨를 조사해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경찰은 10개월에 걸쳐 방이동 사건 현장 주변의 탐문수사를 벌였고 당시 조사를 받았던 참고인을 재조사해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 63세 이씨가 저지른 두 건의 살인사건도 덩달아 밝혀졌다. 이씨는 2001년 2월 전북 익산의 한 서점에 들어가 점원을 살해했다.

또 1995년 필로폰 투약 상태에서 차를 몰다 사람을 친 뒤 시신을 내다버린 혐의도 추가로 드러나 관할 경찰서가 수사에 나선 상태다. 이 밖에도 두 이씨의 공동 범행 몇 가지가 추가로 드러났다. 그중 하나는 2004년 1월에 벌어졌다. 두 사람은 당시 서울 논현동에서 신문사 직원을 가장해 남모(45)씨의 승용차에 접근했다. 그리고 금품을 훔치려다 남씨에게 발각돼 남씨의 오른팔을 찌른 뒤 도주했다. 한 달 뒤에는 월계동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의사를 흉기로 위협해 20만원을 빼앗아 달아나기도 했다.

 

마약 하고 흉기 휘둘러

이들은 범행을 할 때마다 마약에 취해 별다른 죄의식 없이 잔혹하게 살인행각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석촌동 사건을 비롯해 살인을 할 때마다 마약에 취해 있었다”며 “환각 상태라 죄의식 없이 잔인하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복역 중인 두 이씨에게 강도살인 혐의 등을 추가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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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드러난 ‘살인의 추억’

‘얼굴 없는 범인’에 당한 희생자 4人, 편지 한 통에 恨 풀었다

출처 헤이멘뉴스  http://heymannews.mediahey.com/33417
2009.08.02 02:11:04

 

5년 동안 미궁에 빠졌던 살인 사건의 범인이 다른 곳도 아닌 교도소 안에서 붙잡혔다.

 

무려 4명의 무고한 시민을 흉기로 난도질한 일당은 이미 2명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상태였다. 이들은 서로에게 보낸 안부편지에 미처 드러나지 않은 여죄를 구구절절 적었다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마약을 투약하고 환각상태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 덕분에 살인마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모두 6명을 살해한 것으로 최종 확인된 일당은 최근 ‘석촌동 연쇄살인범’으로 불리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경찰은 복역 중인 일당에게 강도 살인 등 4건의 혐의를 더해 추가 기소의견을 내고 사건을 지난달 21일 검찰에 송치했다. 5년 동안 미궁에 빠졌던 사건의 진범이 잡히면서 억울한 피해자들은 한을 풀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범행 전모가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은 씁쓸하다. 추가범죄가 벌어지기 전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일선 수사팀의 공백이 아쉬운 까닭이다.

이모(43)씨 등 일당 2명은 5년 전 서울 석촌동 한 전당포에 침입했다. 이들은 물건을 훔치다 주인에게 발각되자 흉기를 휘둘러 그를 살해했다. 또 현장을 목격한 이웃 비디오방 종업원 역시 잔인하게 난도질해 숨지게 했다. 얼마 뒤 이씨 일당은 경찰에 꼬리를 잡혔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 손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가 2명 뿐 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들은 ‘석촌동 살인사건’을 저지르기 전 모두 3건의 범행을 저질러 4명의 생명을 잔인하게 빼앗았던 것이다. 이들이 앞서 저지른 살인사건들은 모두 미제로 남아 있었다.

 

3번 더 털고 4명 더 죽였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2004년 12월 ‘석촌동 살인사건’을 저지른 이씨 일당이 3건의 추가 범행을 통해 4명을 추가로 살해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지난 2004년 10월 공범인 또다른 이씨(63)의 집에 가던 중 송파구 방이동의 한 빌라에 침입했다.

자신을 ‘가스 검침원’이라고 속여 집주인을 안심시킨 이씨는 한순간 강도로 돌변했고 집에 있던 김모(56·여)씨 등 50대 주부 2명을 품고 있던 칼로 찔렀다. 두 여인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씨는 범행 당시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빌라에서 훔친 현금카드로 50만원을 인출한 사실 역시 인정한 그는 “두 여성이 갑자기 나를 공격하는 것 같은 환상을 보고 나도 모르게 칼을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일당은 2004년 1월에도 강도짓을 저질렀다. 강남구 논현동 길가에 주차된 차를 부수고 물건을 훔치던 이씨 일당은 차 주인에게 들키자 칼을 휘두른 뒤 도망쳤다. 공격을 받은 차 주인은 다행히 팔에만 상처를 입었을 뿐 목숨을 건졌다.

범행 한 달 만인 같은 해 2월에는 노원구 월계동의 한 이비인후과 병원에 침입해 의사를 흉기로 위협하고 현금 20만원을 빼앗아 달아나기도 했다.

이씨의 공범이자 60대 노인인 또 다른 이씨 역시 2명의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연쇄살인범으로 드러났다. 그는 2001년 2월 전북 익산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 점원을 죽였다. 또 1995년에는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로 차를 몰다 사람을 치어 살해하기도 했다. 이씨는 피해자의 시신을 외딴 곳에 옮겨 유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조사에 10개월 소요

43세 이씨가 저지른 방이동 빌라 살인사건은 최근까지 미제 상태였다. 용의자가 숨진 피해자의 현금카드를 이용해 돈을 뽑는 장면이 CCTV에 촬영됐지만 모자와 두꺼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탓에 수사가 답보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

하지만 사건은 범인 이씨가 직접 쓴 안부편지 한 통 때문에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이씨가 보낸 편지가 편지를 받은 일당과 한 방을 쓰는 또 다른 재소자 눈에 띤 게 최대의 실수였던 것.

문제의 편지에는 “2004년 방이동 빌라에 들어가 주부 2명을 흉기로 찔러 죽였다. 피해자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한 동료 재소자는 곧장 교도소 측에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곧 재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편지를 보낸 이씨를 조사하는 한편, 부검기록과 사건기록을 꼼꼼히 다시 살피면서 이씨의 진술과 면밀히 대조했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꼬박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경찰은 5년 전 살인사건이 벌어진 방이동 주변을 탐문수사하고 당시 조사를 받았던 참고인들을 모조리 다시 불러 진실 찾기에 열을 올렸다. 마침내 경찰은 이씨의 진술 가운데 상당부분이 실제 범행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이씨는 범인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사건현장의 세세한 부분을 지적했고 최근 현장검증에서도 범행 과정을 덤덤하게 재연해냈다. 공범인 63세 이씨의 또 다른 살인 혐의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진실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은 20여년 이상 마약거래를 하며 친해진 사이로 범행을 실행하면서도 약물에 취해있었다”며 “환각 상태라 죄의식 없이 잔인한 범행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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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그 사건<22>] 석촌동 살인사건

일요신문 | 입력 2007.07.13 08:34

 

2004년 12월 8일 오후 1시경 서울 송파구 석촌동 대로변의 5층짜리 상가건물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살된 사람은 이 건물 3층에서 영업을 하고 있던 전당포 주인 고 아무개 씨(57)와 맞은편에 위치한 비디오방 종업원 신 아무개 씨(22). 두 사람 모두 예리한 흉기로 각각 15~17군데나 찔린 채 죽어 있었다.

↑ 전당포 CCTV에 찍힌 범인들의 모습(위)과 증거물로 압수된 물품들. SBS TV 촬영

 

현장은 더없이 참혹했다.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찔러댔는지 피살자들이 쓰러져있는 전당포에서 비디오방 입구까지는 그야말로 '피바다'를 방불케 했다. 대낮에 도심 한복판 상가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사건. 현재 송파경찰서 강력8팀을 지휘하고 있는 박성수 팀장(48·경위)이 기자에게 전하는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은 바로 2004년 12월 사건 발생 후 3개월간 당시 관할서인 수서경찰서 형사들의 속을 무던히도 끓였던 일명 '석촌동 살인사건'이다. 당시 강남경찰서 소속이었던 박 팀장은 사건을 이렇게 회고한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민생치안이 강조되던 차에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비상이 걸렸다. 우리는 그 무렵 병원을 전문으로 터는 다른 강도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수집해 뒀던 범인의 물건을 토대로 추가수사를 한 결과, 이들이 석촌동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조사결과 드러난 범인들의 과감한 범행들과 치밀한 도피행각, 또 검거 후 보인 그들의 뻔뻔스러운 행태에 기가 막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보던 손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즉시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두 점포가 마주보고 있는 데다가 같은 시각에 두 명이 연달아 살해된 점으로 미뤄 동일범의 소행으로 확신했다. 대낮에 이처럼 끔찍한 살인행각을 저지른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가장 큰 의문은 범행동기였다.

경찰은 우선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전당포 주인이 살해된 것으로
보아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해나갔다. 하지만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아파트 대로변의 상가에서 그와 같은 과감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굳이 돈이 목적이라면 위험을 감수한 대낮 범행보다는 야심한 밤이 훨씬 나을 터였다. 더구나 피살자는 50대 남성과 20대 청년으로, 범인이 아무 공통점도 없는 두 사람을 연달아 살해해야했을 이유도 오리무중이었다.

특히 경찰을 놀라게 한 것은 잔인한 범행수법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스무 번 가까이 흉기로 찔러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으로 보아 범행 목적이 단순히 돈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경찰은 범인이 어떤 원한이나 치정, 채무관계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열어 두고 피살자들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피살자의 통화내역 분석과 주변인물을 상대로 한 탐문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특징지을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 남겨진 지문과 족적을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하는 동시에 강도 살인 전력이 있는 동일수법 전과자들을 상대로 수사에 들어갔다.

다행히 범인의 모습은 상가 CCTV 화면에 잡혀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 옆 건물 금은방 가게 내부에 있던 CCTV 화면에서 다급히 현장을 빠져나오는 남자 2명의 모습이 발견된 것. 하지만 점포 안에서 작동하던 CCTV인지라 화면이 워낙 흐려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분석하기란 어려웠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수서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밤낮으로 매달렸지만 범인이 두 명의 남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경찰은 1000만 원의 현상금을 걸고 용의자인 30대 남성 두 명을 전국에 공개 수배했지만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수사는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한편 석촌동 살인사건이 발생한 그 무렵,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던 박 팀장은 병원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강도행각을 일삼던 두 명의 용의자를 쫓고 있었다. 다음은 박 팀장의 설명.

"압구정에 소재한 성형외과에 환자를 가장한 2인조 강도가 침입해 의사와 간호사를 위협하고 돈을 뺏은 사건이 발생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병원이 한두 곳이 아니더라. 목동과 신정동, 광명시 등 도심 외곽지역의 병원들도 환자를 가장한 두 명의 남성들로부터 강도피해를 당하는 사건이 줄줄이 발생했던 것이다. 수법으로 보아 동일범의 범행으로 추정됐는데 피해를 당한 병원 측에 따르면 범인들은 병원 진료를 마칠 무렵 환자들이 없는 시각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강도 용의자들의 윤곽은 의외의 단서로 쉽게 드러났다. 당시 강력반 소속 형사가 아는 사람 중에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하는 상인이 있었는데물건을 팔고 받은 수표가 바로 강도를 당한 그 병원에서 나온 수표였던 것이다. 경찰은 수표를 역추적한 결과 이만식(가명·당시 59세)이라는 인물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이만식은 마약과 강도 등 전과가 화려한 인물로, 당시 사기도박에 연루되어 수배가 돼있었다. 하지만 직업도 없고 특정 거주지도 없던 이만식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다음은 박 팀장의 설명.

"이만식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수사팀은 그의 아들을 찾아갔다. '아버지를 이대로 두면 큰일 난다. 빨리 잡히는 게 낫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아들은 특별한 사연으로 아버지인 이만식과 의절하고 지낸 지 오래된 탓에 현재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단지 아버지가 과거에 방이동 '먹자골목' 근처에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일대 상점을 일일이 탐문, 이만식과 가깝게 지냈던 인물들을 찾아 나섰다. 이만식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얻기 위해 일주일동안 그 일대를 찾아다닌 결과 한때 이만식과 친했다는 상점 주인으로부터 '얼마 전 이만식이 어떤 남자와 같이 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만식의 행방이 서서히 드러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박 팀장은 이만식의 지인들을 상대로 끈질긴 탐문수사를 계속했다. 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만식은 춤을 상당히 잘 추고 말주변이 좋은 달변가로 소문이 나있었다. 또 본래 나이보다 무척 젊어 보이는 외모라는 것이 주변사람들의 평이었다.

"열흘 넘게 계속된 탐문수사로 우리는 이만식이 거주했다는 하숙집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숙집에 가보니 당연히 이만식은 없었다. 이만식이 하도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자 하숙집 주인은 이만식의 짐을 싸서 창고에 넣어둔 상태였다. 그의 짐을 살펴보던 우리는 이만식의 신발을 발견하고 그것을 챙겨서 돌아왔다."

수사팀은 끈질긴 수사 끝에 이만식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낸 후 통신 수사를 실시, 그가 대구서 도피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긴박했던 수사상황에 대해 박 팀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이만식이 평소 춤을 즐긴다는 사실에 근거해 수사팀은 대구 시내의 카바레를 몽땅 뒤졌다. 또 그가 대구에 연고도 없는 처지였기에 장기간 은신해 있을 만한 여관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 결과 한 여인숙 주인으로부터 이만식이 이틀 동안 묵었다가 방이 춥다며 다른 여관으로 옮겼다는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이만식이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낸 우리는 섣불리 검거하다가 실패할 것을 우려, 그가 나올 때까지 여관 근처에서 잠복했다. 정오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여관에서 나오는 이만식의 모습이 보였다. 근처 여인숙으로 또 숙소를 옮기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범인 검거 직전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만식의 휘황찬란한 행색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는 후줄근한 '도망자'의 행색이 아니었다. 이만식은 성형외과 의사에게 뺏은 명품 선글라스와 바바리를 사업가로 보일 만큼 멋지게 차려입고 커다란 가방을 끌고 있었다."

검거된 이만식은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고 한다.

"보통 피의자들은 혐의에 대해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이만식은 자신의 강도행각을 너무도 순순히 인정했다. 조서 역시 특별히 강요도 안했는데 첫 번째 범행을 한 곳은 어디, 두 번째는 어디 이런 식으로 알아서 척척 써내려가더라. 조사결과 밝혀진 이만식의 범행은 무려 17차례로 피해금액만도 5000만 원에 달했다. 전과가 수두룩한 이만식이 단 한 번의 부인도 없이 알아서 술술 자백한다는 게 좀 이상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석촌동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오랜 수사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형사의 직감은 무서웠다. '뭔가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박 팀장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순순히 범행을 자백한다는 것은 오히려 다른 추가범행을 감추기 위한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만식을 수사하던 박 팀장은 그가 묵었던 하숙집에서 가져온 신발을 살펴보던 중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신발 밑창에 혈흔이 묻어있었던 것이다. 오랜 강력반 생활에서 터득한 직감이었을까. 박 팀장은 관내에서 발생한 강력사건들을 일일이 확인하던 중 3개월 전 발생해 미제로 남아있던 석촌동 살인사건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아니나 다를까. 박 팀장은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과 이만식의 신발 문양이 일치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국과수 감정결과 신발에 묻은 핏자국이 석촌동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동일한 것으로 나온 것. 이들은 끔찍한 강도 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후에도 서울 외곽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강도행각을 계속 벌여왔던 것이었다.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끝까지 완강히 부인하던 이만식은 결국 대전에서 검거된 공범 이덕구(가명·당시 40세)의 자백과 더불어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사실을 실토하게 된다. 3개월 동안 미궁에 빠져있었던 석촌동 살인사건의 진실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동향 출신으로 교도소에서 서로 알게 된 이만식과 이덕구는 출소 후에도 필로폰 투약을 계기로 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다. 특정한 직업 없이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이들의 삶은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고정 수입도 없이 막막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에게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이들은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전당포 주인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기로 공모하게 된다. 범행대상은 이만식이 과거 몇 차례 거래를 한 적이 있는 석촌동의 전당포 주인이었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이들은 전당포 내부에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덕구는 밖에서 망을 보고 평소 전당포 주인과 안면이 있던 이만식이 혼자 먼저 들어가는 것으로 범행을 개시했다. 잠시 후 이덕구가 전당포로 올라갔는데 이만식은 미리 준비해둔 장도리로 전당포 주인의 머리를 마구 가격하고 있더란다. 그리고 잠시 후 거세게 반항하는 주인을 흉기로 무지막지하게 찔러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살인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전당포 앞에서 초조하게 망을 보고 있던 이덕구에게 '딸깍' 소리가 들렸다. 둔기로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은 비디오방 점원이 문을 열고 나온 것이었다. 이어지는 박 팀장의 설명.

"이덕구는 놀라서 서 있는 비디오방 점원 신 씨를 데리고 다급히 비디오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깐 앉아봐라'고 했다는 거다. 그런데 신 씨는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약간의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었던 신 씨가 그 상황에서 이덕구의 말에 순순히 따랐을 리 만무했다. 이덕구는 놀라서 도망가려는 점원 신 씨를 붙잡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범행 후 상가를 빠져나온 이들은 '이왕 죽였으니 물건이나 갖고 가자'는 이만식의 제안에 다시 범행 현장에 올라가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고 사창가 일대를 전전하며 제각기 도피행각을 벌여왔는데 둘의 '접선'도 간간이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다방에서 만나자'는 막연한 약속만으로 이뤄져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평소 흉기를
지니고 다녔는데 특히 이만식은 이날 범행을 위해 장도리를 구입한 후 소지하기 쉽도록 자루까지 짧게 잘라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거 당시에도 이들은 붙잡힐 경우 경찰을 찌르고 자살하려는 계획으로 칼과 독극물을 소지하고 있어 경찰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경찰을 분노케한 것은 검거 후 이들이 보인 파렴치한 태도였다.

"이들은 경찰서에서도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농담을 하는 등 아무런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성은커녕 '오늘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등 식사메뉴까지 정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 형사들의 말문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도저히 사람 두 명을 죽이고 무차별적인 강도행각을 벌인 이들이라고 볼 수 없었다. 또 이만식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찾아냈는가.

 

대구에 아무 연고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대구에 있는 것을 알고 좇아왔는가. 정말 대단들 하시다'며 우리들을 오히려 '칭찬'하는 엽기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병원강도 행각에 대해서도 '의사들이 돈이 많을 것 같아서 병원을 상대로 범행을 했다. 강남에서 범행을 하면 뉴스에 오르내릴게 뻔하지 않나. 그래서 압구정 한 곳만 제외하고는 일부러 외곽지역에 위치한 병원만을 상대로 범행을 해왔다'며 자신들의 범행수법을 자랑스레 늘어놓기도 했다."

이만식과 이덕구는 살인과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모두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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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와 이진구는 4명을 살해하는 동안 항상 환각상태였다고 한다.

출처 : 미제사건추적-그들은살고싶었다
글쓴이 : 아름다운현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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