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교정시설...(사건사고포함)

[스크랩] 오원춘의 무기징역과 그리고 인권.

최강동원 2013. 1. 17. 12:12

 

 
봄에서 여름으로 막 넘어가는 때쯤이었나보다. 수원의 어떤 곳에서 잔인하다 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처참하게 한 사람이 생사를 달리 했다. 어쩜 저렇게 사람을 잔인하고 또한 극악무도하게 짓밟을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고, 경마 저널리즘(진실을 본질로한 공정하고 또한 객관적인 보도에서 벗어난 흥미위주의 경쟁적 보도)에 치를 떨었다.
 
대국민적인 공분이 일었다. 어쩌면 온국민은 그리고 나는 그 극악무도 하고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저 살인마에게 사형을 언도하길 바랬다. 하지만, 어제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나왔고, 무기징역이라고 그런다.
 
오원춘의 사형에 찬성했던 이유
 
싸이코패스네 뭐네 참 악질적인 범죄가 해마다 나타나고 있다. 강호순, 김길태, 유영철, 조두순 거기다가 저 오원춘까지 포함해서. 아직 내가 세상을 많이 못살아 실제로 그 사건들을 몸소 겪지 못했고 또한 너무 어려 인지를 못했을수도 있지만 이런식의 악질적이고 또한 극악무도한 범죄는 해가 바뀌면 바뀔때마다 한건씩은 꼭 일어나는것 같다.

 
나는 사형제도에 찬성한다. 그리고 또 어떤 편으로는 사형제도에 조심스럽다. 정작 다른 사람을 그렇게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게 해한 사람에 대한 인권은 재쳐두고서라도 정작 사형을 집행 해야만 하는 집행수들의 인권이 또한 참으로 안타깝고 안쓰럽기 때문이다. 나는 오원춘의 사형을 정말 간절하게 바랬다. 어쩌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언제든지 그런 범죄에 노출될 위험과 그리고 그의 사형을 통해 정말 백명중에 단 한명이라도 그런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인지하고 또한 그로인해 단 한명의 애꿎은 목숨을 건질수만 있다면 나는 사형제도에 얼마든지 찬성하는 바이다.
 
내 친구중에 하나는 벌써 7년째 마음에 병을 달고 살고 있다. 밤늦게 퇴근하던 길에 한 괴한에게 납치되 강간을 당했다. 혼자서 몇일을 끙끙 앓다 부모님께 이야기를 하고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중에도 수없는 인권 유린을 당했었다. 그 남자가 이 길에서 나를 뒤에서 덮쳐 어디로 끌고가 나의 어디를 이렇게 만지고, 어제 한 진술과 오늘 한 진술이 다르면 처음부터 다시하자며 어쩌면 그 지옥같은 상황을 다시 반복하고 다시 반복하고 끝내 정말 그 상황을 수학공식 외우듯 달달 외울때쯤에나 되어서야 경찰 조사는 끝났다. 불행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수차례의 공판중에도 친구는 그 굴욕적이고 모욕적인 상황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다시 외워야만 했다.
 
언제부턴가 친구는 자기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거 같다며 손을 씻기 시작했다. 손에 지문껍데기가 정말 하얗게 일어날 정도로. 손이 퉁퉁 불어서 손끝이 갈라지고 피가 베어나오고 할머니 손처럼 쭈굴쭈굴해졋다. 그리고 점점 사회와, 그리고 가족과의 단절을 시작했다. 방밖에 안나오기. 그나마 밥먹는것도 부모님이 자기 방 앞에다 밥상을 차려주고 거실이나 공동 생활공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들고 들어가 밥을 먹는다. 밥먹고 나서는 그냥 밥상만 내놓는식.
 
그러면서 몇달 몸져 누워버렸다.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전혀 이해할수가 없는 저 가구와 가구의 틈사이에 내 몸이 끼이는거 같다며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고 자기 방안에서 모든 가구를 빼달란 말과 함께 말이다. 그 추운겨울날에도 폭삭하고 푹신한 솜이불 한번깔고 눕지 못했다. 이불과 이불사이에 자기 몸이 끼이는거 같다며. 한달이고 두달이고 씻지 않아 얼굴에선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고 머리는 이미 떡진지 오래. 좀 씻자고 일으켜 세우기라도 하는 날엔 온갖 가전 집기가 다 날아 다녔다.
 
그러고 또 몇달, 그냥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는게 양반이다 라는 소리가 나올 지경으로 극한으로 치닫았다. 아파트 베란다에 대롱대롱 매달려 나 죽겟다고 온 가족들을 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이정도쯤 되니 잘나가는 큰 기업의 간부쯤 되는 아버님은 회사를 관두셧고, 어머님 역시도 그런 딸을 지켜만 봐야 하니 마음에 병을 얻고 우울증약 없이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신다. 그리고 한참 사춘기 예민하던 동생은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가정의 붕괴가 일어나고 끝내 얼마전 그 친구의 부모님은 친구를 정신병원에 입원 시키셧다.
 
대한민국에서는 참 이상한게 저런일이 일어나도 항상 가해자의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지, 단 한번도 피해자의 인권을 제대로 조명해보거나 혹은 그 피해자의 인권을 가해자보다 먼저 생각해 준 일이 없는거 같다. 하다못해 이번 오원춘의 무기징역에도 아무리 죽은자는 말이 없다지만 그렇게 극악무도하게 살해 당하고, 또한 참 다정했던 누나를 참 싹싹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딸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었던 부모의 심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인권을, 그리고 구천을 떠돌며 원통해 할 고인의 넋을 먼저 생각했다면 나는 무기징역은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집행관의 인권
 
천부인권, 국가 및 법률에 앞서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가지고 있는 권리라는 뜻이다. 피해자들이 그런 참 잔혹한 짓들을 당하고 어떻게 짓밟히고난 뒤에 그 상황을 극복 할수 있다면 참 천만 다행이고 정말 눈물나도록 감사한 일이지만 그 상황을 극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거나 혹은 긍정적인 상황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같은 경우 오원춘 같은 사건에 있어서는 참 인권 에 'ㅇ'자도 들먹거리기도 싫지만 또 그도 인간이기에 최소한의 인권 즉 생명권을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냐 라는 반론이 100이면 한 1~2명정도 꼭 나온다. 정말 어렵다. 이 천부인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저런 오원춘 같은 극악무도하고 범죄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악질적인 살인마나 범죄자에 있어서 사형은 찬성한다. 하지만 그 사형을 찬성하는데도 그렇게 막 이거다 싶고 명쾌하고 그리 썩 유쾌하지 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이직을 꿈꾸고, 실제로 1년에 11%가 이직을 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 상당수가 자신의 적성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나가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사형집행관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지 이미 12년이 넘었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히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다. 현재 사형이 확정된 사람들만 60여 명.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며 ‘죽어 마땅한 자’라는 낙인이 찍혔다지만, 이들을 죽이는 교도관은 또 다른 의미의 ‘살인자’이다. 실제로 어느 인터뷰에서 한 사형집행관은 “내가 살인자가 되는 느낌이다. 이 직업이 저주스럽다”며 서럽게 흐느꼈다. 열이면 열 모두 우울증에 시달리는 직업이 바로 ‘사형집행관’이다.
 
그리고 직접 중죄를 저지르고 죽어야 하는 사람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을지언정 그도 나와 같은 말이 통하고 또한 같은 말을 하는 같은 종의 사람인데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서라지만 굳이 그런 극단적인 가해자의 죽임으로서 보복을 해야 되느냐, 그렇게 죽이고 나면 모든것이 다 용서가 되냐 모든것이 다 없던일이 되느냐, 사형은 사법적 살인이라는 문제도 얽히게 된다. 바로 이게 천부인권을 짓밟는 행위가 되는게 아닐까 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 내가 사상이 이상하거나 혹은 고어물에 환장하며 미친듯 보는 사람도 아니지만(사실 그런것을 보면 무섭고 잔인하고 꿈속에서도 매일 나타나서 가위에 눌려 3박4일을 잠도 제대로 못이루지만) 세상에 온갖 잔인한 방법들을, 정말 일반인이 상상 할수 조차도 없는, 들으면 정말 나를 이상하게 볼 법한 그런 잔인한 행위들로 복수를 하면 어떨까? 라는 그런 생각도 해본적이 있다. 그렇게 해서 피해자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어 질수만 있다면 그게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었고.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집행관들의 인권과 관련해 그 역시도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하고 또한 그 스스로 행하는 일들이 직업적 윤리의식에 빗대도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져다 주는 일이 일어나는 이상에야 나는 이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하지만 또 어떤 편으로는 조심스럽게 다가갈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극악무도한 악질 범죄자의 인권도 존중 받아야 한다 존중 하지 말아야 한다 옥신각신 하는동안 그 뒤에 가리워져 신음하고 있는 집행관의 인권 역시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형제도에 대한 딜레마
 
사형제도에 대한 딜레마가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을 가만히 해본다. 피해자의 인권 그리고 가해자의 인권, 또 어쩌면 제2의 가해자가 되어 가해자를 또 죽여야만 하는 사람의 인권. 이것뿐 아니라 사형을 하고 나면, 그런식의 사법적인 살인을 하고 나면 그 모든것이 해결되느냐 라는 질문에도 나는 딱히 그렇다고 대답할수도 없고 그렇게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서라도 피해자의 마음이 정말 눈곱만큼이라도 풀리게 된다면 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지만 또한 그것에 대해 그렇다고 명쾌하게 대답할수가 없다.
  
이게 사형에 대한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이미 그 사건에 대한 피해자는 이 세상을 떠나있거나 혹은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데 그에 대해 그냥 그런 일들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있어 피해자를 평생을 재기불능 혹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만든것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살려두며 감금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속시원하게 죽여버리고 끝낼것인가.
  
사람이 사람을 죽임으로서 모든것이 다 해결되고 그럴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사람을 죽이지 않고 계속해서 살려둔다면 평생을 가슴속에 돌덩어리 하나를 지고 1년 365일을 상처난 곳에 소금 뿌리고 비빔을 당하는 고통보다 몇백배 몇천배 아니 감히 빗댈수도 없을만큼의 상상 그 이상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의 마음은 어떻게 풀어 줄것인가? 참 어렵다.

 

 

 

출처 : 자유토론
글쓴이 : 난 아직도 i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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