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략한 범행일지 -
1993년 7월 ; 20대 여성 성폭행 후 연습 삼아 살해 암매장
1993년 8월 ; 조직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조직원 살해 암매장
1994년 9월 ; 이모씨 커플 납치 (이모씨 살해, 애인은 도주 성공)
1994년 9월 ; 중소기업 부부 납치 감금(부부 모두 살해, 토막하고 소각)
지존파 사건이란
1993년 4월 김기환은 강동은, 김현양 등을 포섭하여 '지존파'라는 조직을 조직하고 현대백화점
고객명단을 입수하여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1993년 7월 길가던 한 20대 여인을 목졸라 살해하고
그 해 8월에는 조직을 이탈한 송봉호를 살해했다. 1994년 9월 8일 이종원과 이 모(당시 27세)여인을 납치하여 이종원을
9월 10일 살해하였고, 사흘 후 중소기업의 기업가였던 소윤오 부부를 납치하여 돈을 갈취한 후 9월 15일에 살해했다.
그 후 두목 김기환이 납치해 온 한 여성의 처분을 두고 조직원 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이 틈을 타
극적으로 탈출한 한 여성이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지존파 6명 전원이 1994년 9월 21일에 체포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체포되었을 때까지 반성이 없었으며, 살인의 이유를 불평등한 사회 모순이라며 사회로 돌리고 자신들의 가치 전도
현상을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체포 직후에는 모두 진심으로 회개하였고 진술에도 매우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해
10월 31일 재판 결과 이틀 전에 가담한 이경숙을 제외한 지존파 6명 전원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도사형이
확정되어 1995년 11월 2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경숙은 정상참작이 작용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일단락되었다.
지존파의 행동강녕
'돈 있고 백 있는 자의 것은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
지존파 사건의 '지존파'란 이름은 "지존파 일당은 스스로를 '야망'이란 뜻의 희랍어 '마스칸'이라 불렀지만
타인을 희생시킨 조직 이름으로 맞지 않다고 판단해 당시 수사관인 고병천(60)경정이 '지존파'로 이름 붙인 것"
한국의 연쇄살인을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살인집단. 바로 지존파다. 평균나이 22세,
“더 못 죽인 게 한이다”고
이갈하며 TV중계 카메라를 노려보던 새파란 청년들은 1990년대 전국을 경악으로 물들였다.
1994년 전국을 경악케 한 지존파 사건이 발생했다.
일당 5명의 살인마들른 살인과 시체 소각을 위한 특수 감옥과 소각로까지 만들어놓고 고급 승용차 등을 탄 사람들을 납치하여 엽기적으로 살해하여 추석을 앞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준 것이다. 이들은 지옥의 살인사건 현장을 탈출한 한 여성에 의해 신고되어 1993년 7월부터 1994년까지 5명을 살해한 뒤 시체를 암매장하거나 소각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 구속되었다. 이들은 조직범죄단 `지존파'를 결성하여 범죄 행위를 저질렀고 두목은 교도소에 수검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존파는 9월13일에 납치했던 울산 삼정기계 사장 소윤오씨(42) 부부를 가스총으로 쏘아 쓰러뜨린뒤 포터 트럭 뒤칸에 싣고와 아지트 지하 감옥에 가둔 뒤 살해하고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러 수사하는 형사들까지 놀라게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김현양(22세 : 전남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 강동은(21세 :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강문섭(20세: 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신2동) 문상록(23세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강1동) 백병옥(20세: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등 지존파 일당 5명을 구속하고 강간치상혐의로 지난해 6월 구속돼 있는 두목 김기환(26세 :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에 대해 살인 혐의를 추가했다. 지존파 조직원들은 지난해 8월에는 같은 조직원인 송봉은(23)을 살해한 뒤에 암매장하기까지 했다. 또 93년 7월에는 살인연습을 한다며 충남 논산의 길에서 23세 가량의 여자를 무작의로 납치한 뒤에 살해하여 암매장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돈 있고 빽 있는 자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 등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부유층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와 살육 행각을 벌였으며, 심지어 사체 일부를 먹은 사실도 드러나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지존파의 범인들은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카페 종업원 이영숙(가명 : 23세)에 의해 경찰에 신고될 때까지 그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영숙이 목숨을 걸고 탈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대량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대규모의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살인 예행 연습'과 '식인'을 했고 배신자를 잔인하게 살해하여 암장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카페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고 있던 이영숙은 1994년 9월8일 새벽 3시, 카페 밴드마스터인 이종현(가명 : 36세)의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양평군 와부읍 양수리를 즐겁게 드라이브하고 있었다. 카페의 일을 끝내고 경치가 좋은 양수리를 드라이브하는 것은 가끔 있었던 일이었다. 차가 양수리 못미처 한적한 국도를 달릴 때였다. 갑자기 르망 승용차가 앞을 가로막고 포터 화물차가 뒤를 막았다.
"이 자식들이 뭣하는 짓이야?"
이종현은 차를 급정거 시키고 르망 승용차 운전수에게 항의를 하기 위해서 그랜저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때 승용차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후닥닥 뛰어내렸다. 이종현은 일순 당황했다. 사내들은 그에게 가스총을 쏘아대고 입과 눈을 테이프로 가렸다. 이영숙은 차밖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비명을 질렀다. 사내들은 차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영숙에게도 테이프로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렸다.
"조용히 해. 조용히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어!"
사내들은 이종현과 이영숙을 강제로 화물차에 태웠다.
이영숙은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화물차는 전속력으로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이영숙은 사내들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자신이 끌려가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이영숙은 전신을 엄습하는 공포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화물차는 쉬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달린 것일까. 이영숙과 이종현이 끌려간 곳은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라는 곳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곳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영숙과 이종현은 지하실 철창 안에 갇혔다. 이영숙은 정신을 잃었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녀가 눈을 뜨자 사내들이 밥을 주었다. 이영숙은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이영숙은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밥을 먹지 않겠다고? 먹는 것이 좋을 거야."
사내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이영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밥이 입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기 온 여자들은 잘난 척하면서 밥을 먹지 않다가 죽었어."
누군가 이영숙을 향해 이죽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종현과 이영숙에 대해서 경찰이 수사를 하듯이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요 목적은 돈이었다.
사내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그들은 이영숙이 예쁘다면서 얼굴을 만지거나 머릿결을 쓰다듬기도 했다. 이영숙은 그럴 때마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사내들이 이영숙을 차례로 성폭행했다. 이영숙은 눈을 질끈 감고 피눈물을 흘렸다.
"우리와 함께 지내려면 이런 책을 읽은 것이 좋을 거야."
사내들은 성폭행을 끝내 뒤에 이영숙에게 뼁끼통과 야인이라는 책을 던져주었다. 이영숙은 사내들이 악마와 같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몸서리를 쳤다. 시간은 몹시 더디게 흘러갔다. 이영숙은 어떻게 하던지 탈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탈출을 하지 않으면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엄습해 왔다.
이튿날 밤이었다. 사내들이 이종현과 이영숙에게 소주와 맥주를 먹이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이종현과 이영숙에게 구토를 할 정도로 강제로 술을 마시게 했다. 이영숙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계속 마시라구. 마신 뒤에 죽으면 아저씨는 음주운전으로 죽은 걸로 되는 거야."
사내들이 낄낄대고 웃으며 말했다. 사내들도 술이 취해 있었다.
이영숙은 술이 취해 엉금엉금 기었다.
"아가씨도 죽게 될거야. 그러나 아가씨는 고통없이 죽게 해주지."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사내들은 이미 이종현과 이영숙을 취조하듯이 샅샅이 조사를 했었다. 그 결과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종현과 이영숙이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죽이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이영숙은 공포에 사로잡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살려만 주면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을 했다.
"그러면 우리가 시키는대로 할거야?"
김현양이 이영숙에게 물었다.
"네.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우리는 돈 많은 놈들을 모조리 죽일 거야. 우리와 같은 편이 되겠어?"
"네."
"좋아 그렇다면 살려주지."
김현양이 웃으며 말했다.
"이 여자를 살려주면 안돼."
문상록이 반대를 했다. 김현양과 문상록은 치열하게 말다툼을 하다가 멱살까지 잡고 싸웠다.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밤이기도 했다. 사내들은 이종현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이종현은 술이 취해 인사불성으로 쓰러져 있었다. 사내들은 그러한 이종현에게 비닐을 씌워 질식을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인사불성으로 술이 취한 이종현은 사내들이 비닐을 씌우자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목을 졸라!"
김현양이 소리를 질렀다.
"너도 목을 조르란 말이야!"
김현양은 이영숙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9월13일 소윤오씨 부부가 사내들에게 납치되어 끌려왔다. 그들은 소윤오씨 부부를 협박해 돈을 빼앗았다. 그들은 9월15일 소윤상을 공기총으로 살해하면서 이영숙에게도 강제로 공기총을 쏘게 했다. 이영숙을 공범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소윤상의 부인은 칼과 도끼로 살해했다. 김현양은 소윤오씨의 부인을 살해한 뒤에 인육을 도려내 이영숙에게 먹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영숙은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김현양은 이영숙이 거부하자 그 인육을 자신이 먹었다.
이영숙이 지존파와 함께 억류되었던 일주일은 공포의 연속이었다. 지존파는 소씨 부부의 사체를 소각했다. 9월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가 잘못하여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김현양은 머리에 폭발사고를 당해 영광종합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갈 때 이영숙을 동행시켰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 동안 핸드폰과 치료비에 쓰기 위해 가져간 돈 50만원을 이영숙에게 맡겼다. 이영숙은 김현양이 치료를 받는 동안 병원을 뛰쳐 나왔다. 그녀는 병원에서 택시를 타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택시기사는 이영숙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영숙은 폭력배들에게 좆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영광에 있는 폭력배는 자신이 다 안다고 말했다. 이영숙은 택시 기사도 지존파와 같은 패거리가 아닌가하여 공포에 사로잡혔다. 서울쪽으로 가다가 공포에 사로잡혀서 내려달라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녀를 내려주었다. 근처에 마침 포도밭이 있었다. 이영숙은 포도밭으로 달려가서 주인을 찾았다. 그리고 주인에게 숨겨달라고 말했다. 이영숙은 주인이 불러준 렌터카를 타고 대전으로 왔다. 범인들이 좆아올지 몰라 다시 택시를 바꿔타고 서울로 왔다.
이영숙은 밤12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녀는 우선 여관으로 찾아갔다. 범인들이 그녀의 집과 직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곳으로 갈 수 없었다. 이영숙은 근처에 있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 친구가 남편과 함께 찾아와서 경찰에 신고해주었다. 이렇게 하여 세상을 경악시킨 세칭 지존파 사건이 발각된 것이다.
지존파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범인들은 일제히 검거된 뒤에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돈 있는 놈, 빽 있는 놈 압구정 야타족, 모조리 죽여버릴려고 생각했다, 방송국을 점거하려고 했다, 지리산에서 일주일 동안 지옥훈련을 했다고 하여 전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게다가 그들은 지하실에 사제 감옥을 만들고 사체 소각로까지 만들어 앞으로 대량 살인을 계획하기까지했다. 그러나 이영숙의 필사적인 탈출로 대량살인사건이 미연에 방지되어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4년 9월 20일 서초경찰서는 전국을 무대로 납치살해 소각 암매장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해가며 5명(이때 이로부터 8개월 전 조직원 송 모씨를 살해한 것도 밝혀져서 한명 추가)을 살해한 살인 범죄단인 지존파 일당 6명을 검거했다.
재판결과, 정상이 참작된 이경숙을 제외한 살인ㆍ강도ㆍ사체유기죄 등을 적용, 사형을 선고받은 지존파 일당 김기환(27), 강동은(23), 김현양(23), 강문섭(21), 문상록(24), 백병옥(21)은 1995년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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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공장'이라고 불리는 범죄 아지트.
그곳에는 창살 감금시설과 사체를 은닉하기 위해 만든 자체 소각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그들은 소각할 때 타는 냄새를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마당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었다.
심지어 담력을 키우기 위해서 인육을 먹었다는 진술도 서슴치 않았다.
김현양:
난 인간이 아니라니까.
기자; 시체 일부를 먹었습니까?
김현양:
혼자먹었어요, 혼자.
인간이기를 포기하려고.
실제로 현장검증 당시 냉장고에는 사체 일부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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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김기환이 최후에 대해서...
온 국민을 경악시켰던 지존파를 우린 기억한다. 두목 김기환의 경우
부하들이 종교에 귀의한 뒤에도 스스로를 ‘악마’라고 부르짖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보름 앞두고 영세를 받았다.
그후 깊은 참회를 하고 불우이웃을 위해 영치금을 맡기는가 하면 자신의 장기는 물론 시신까지 기증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또 “죽일 놈들을 다 못 죽이고 잡혀 억울하다”며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지존파 김현양도 세례를 받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큰 죄를 짓고 이곳에 왔지만 이곳에서 구원을 얻게 돼 기쁘다 ”는 유언을 남기고
형을 받았다.
- 국민일보 이지현기자의 기사에는 이렇게 되어있지만...
#1995.11.2 집행 김기환
지존파 일당 6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두목 김기환은 7시 35분에 이끌려왔다. 최후로 할 말이 있는가라고 묻자 “죄인이 할 말은 없으나 남자는 자기가 한 말은 끝까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회개하기보다는 자기가 했던 말을 합리화하려는 것 같았다. 그 후 냉소하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께 내가 새 인생을 걷는다고 전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7시 55분에 집행됐고 8시 8분에 절명했다.
- 역시 이런 기사도 국민일보에 있다...이 부분은 ‘사형장 일기’-문장석목사 - 에서 발췌되었다.
지존파 현장 검증 동영상
다시는 이땅에 이런 흉악한 범죄가 없길 바라며
억울하게 희생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_(__)_
아름다운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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